<고운석 칼럼> 명절 선물도 양면성(?) | | | 입력시간 : 2012. 09.27. 00:00 |   |
서민들은 추석같은 大명절도 없었으면 한다. 이 때문에 명절 때마다 선물을 없애자는 계몽운동이 벌어지고 또 많은 시민이 의당 그래야 한다고들 하고 있다.
한 데 계몽하러 가두에 나선 분이나, 또 검소하게 보내자고 한 사람들도 정작 주는 선물, 받는 선물이 없고 보면 막연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주고 받던 것이 끊어진 데 대한 허전 때문이 아니라, 선물이 밀착시키고 있는 한국 사회의 어떤 연대 의식에서 외톨로 나가 떨어져 있다는 구조적 고독 때문인 것이다.
선물에는 야누스처럼 양면성이 있다. 어떤 선물은 의당 없애야하며, 또 계몽이나 자각으로 없앨 수 있지만, 어떤 선물은 인위적으로 없앨수도 없으려니와 오히려 조장시켜야 할 줄 안다.
철종 때 외척인 김좌근, 김수근, 김문근이 교동(絞洞)에 살고, 김병국, 김병학, 김병기가 사동(寺洞)에 살았기로 안동 김씨의 세도를 줄여 말할 때 교사주문(絞寺朱門)이라 했다.
명절이면 팔도 3백 60저의 수령들이 설물을 들고 이 교사 주문에 몰렸기로, 이 별슬아치의 말이나 나귀들에게 약과나 약식을 바치고 가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겼던 것이다.
대원군 때 세도를 부렸던 천·하·장·안(千河張安)의 사성받이 문안에는 곳간이 열두 개씩이나 있었다 한다. 이 같은 목적이 개재된 선물의 전통은 꾸준하여 오늘날의 설물 생리를 이룬 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지금도 이뤄지고 있지만, 선물의 탈을 쓴 뇌물이다. 이런 선물은 배격돼야 하며, 배제할 수 있으며, 또 사회가 정상화되면 소멸되는 그런 성향의 선물이다.
누가 꼭 선물은 요구하지 않았는데, 강요받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그것을 강요하는 어떤 공통 분모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 속에서나 보세구역의 면세 판매점에서 줄지어 서서, 면세로 살 수 있는 최대한의 술과 담배를 사는 것이 상식처럼 돼있슴도 이 공통 분모의 작용인 것이다.
서구인은 여행중에 자기가 마시고 피울 분량만큼만 사는데 반해, 한국인은 자신이 먹고 피울것에 선행해서 친척, 동료, 이웃, 환송 나와 준 사람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나눠 줄 그런 선물의식 때문에 그것들을 산다. “한국인은 값나가지 않는 똑같은 물건을 많이 사가는데 예외가 없다”는 동남아 세관원들의 말들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
이 한국인에게 유독 두드러진 선물 생리는 한국인의 신앙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곧 너무 잦은 가종 제사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서양 사람들은 한 신을 믿기에 제사는 하나밖에 없다.
한데 한국인은 비를 비는 천신부터 산신, 동신, 용신, 수신, 암신, 모든 산천초목에서부터 아이를 낳게 해주는 삼신, 5대에서 10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많은 조상신 등 속칭 3천 2백에 이르는 다신을 믿기에 제사가 많다. 여느 집안이나 제사를 지내면 음복이라 하여 제주와 제사 음식을 나눠먹는 습속이 있다.
마을에 당제가 있는 날, 제사 끝내고 돌아오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건 옛날 어린이들에게 강요된 한 습속이었다.
두루마기 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마을로 다가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마냥 신이나서 달려가면 할아버지는 제삿상에 올랏던 밤이나 대추, 곳감 등 건과를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주면서 이것을 먹으면 병도 안걸리고 액도 사라진다고 말해주셨던 것이다.
당제 음식은 나눠 먹어야 한다는 습속화된 주술 행위가 손자를 반기는 행위와 복합돼서 이루어진 것이다. 선물이라는 말 자체가 제삿상에 올린 음식이란 뜻이다.
곧 어떤 공동체의 공동 의식을 결속시키는 신통력 있는 음식이란 뜻이며, 그것은 그 공동체에 나눠 줘야 한다는 필연성 때문에 요즈음 뜻인 선물로 전화(轉化)한 것뿐이다.
한데 명절이면 선물때문에 고민들 한다.
고운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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