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정직하고 청렴한 길을 걸어가는데는 늦었다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늦게나마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 한데 세상이 어수선 하다.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나라가 거들났다고들 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낙담하기도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존경하고, 믿고 의지할 만한 원로(元老)라도 한 사람쯤 있어서 중구난방이 된 정치판이나 사회풍조에 일침을 가하면서 몸소 바른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면 이 같이 적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국이 잔인무도한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한지 어언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심어줄 원로는 어찌하여 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없는 것일까. 우리의 주위가 상처투성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귀감이 될 만한 원로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적은 전적들을 읽노라면 한 시대를 풍미한 휴머니스트들이 많다. 그들의 삶이 너무도 진솔하고 아름다웠기에 따르는 후진들에게는 두고두고 귀감으로 남았다.

이미 수세기 전에 세상을 등진 그분들의 아름다운 이름에서 끊임없는 향수를 느끼고,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들의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도 물론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원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가난하게 살면서도 낙담하지 아니하고, 견딜 수 없는 핍박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꿈틀거리게 하자면 한여름 뙤약볕에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느티나무와 같은 원로가 우리곁에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는 그런 원로들이 있었기에 핍박받고 살았던 빈번한 민중들은 배고픔도 능히 참을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꾸려갈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청백리로 추앙받으면서 모범적인 삶을 보여주었던 정승들이나 원로가 세상을 떠나면 대개는 장례를 치룰 수 있는 비용이 없었다. 임금은 그 상가에 장례비를 보내 고인을 애도하고, 며칠씩 조회를 중단하는 것으로 개인의 죽음을 국가의 손실로 승화시키곤 했다.

세종의 명신이자 삶의 아름다움을 실천하여 보여준 고불 맹사성(1359~1428)은 원로의 표상이다. 그가 다시 살아나 우리 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환상에 젖어보는 것은 고불 맹사성의 큰 그늘이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의 상처를 그나마 안온하게 어루만져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맹사성은 고려말(공민왕8년)에 태어났고, 저 유명한 최영 장군의 손자사위이다. 고려의 우왕(禑王)때 문과에 장원하여 세종조에 이르러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어도 삶이 청빈하고 검소하여 평생을 초가집에서 살았던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이었다.

어느날 당시의 병조판서가 국사를 의논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가 소나기를 맞게 되었다. 정승이 거처하는 방 안에 있었는데도 관복이 빗물에 젖은 지경이었다. 병조판서는 국사의 의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행랑채를 모두 헐어버렸다는 고사는 너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실화는 요즘말로 바꾸면 부총리의 집이 그같이 검소한 것을 보고, 국방장관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자신의 집 행랑채를 헐어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세종조를 찬란한 태평성대라고 하는 것은 정승과 판서의 이같은 정신적인 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원로의 인품이 널리 아랫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데 현대에 와서는 대통령과 측근들까지 부정과 비리로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일부 관료들도 마찬가지인데, 최근 ‘뇌물 검사’의 구속에 이어 초임 검사의 부적절한 관계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날 뿐이다.

고운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