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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불과 같다. 너무 멀리하면 춥고 너무 가까이 하면 화상을 입는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위탁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데 제 18대 대통령선거의 열기가 한층 뜨겁던 지난 11월, 드라마 작가 신봉승씨가 기상천외한 책 한 권을 상재했다. <세종,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다>가 그 제목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모두 27명의 임금과 그 임금을 보좌한 600 내지 700여 명의 고위공직자가 있었는데, 이들을 현대 한국의 현실정치 한 가운데로 불러낸 상황 설정이다.

그리하여 세종에게 대통령직을 주고, 명현으로 이름 높은 선비들을 각기 행정부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세종에게 대통령을 맡긴 것은 어느 모로나 수긍이 간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을 박정희 독재자의 딸이라 비판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세종은 이방원의 아들이요 이성계의 손자임을 참조해야)하지만 각 부의 장관이나 권력기관장은 일반적으로 그 행적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보인다.

책에서는 왜 그가 거기에 적합한 인재인가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객관적 평가가 수반되어 있다. 국무총리는 세종 치세의 황희가 아니라 선조·광해군·인조의 3대에 이르는 왕 밑에서 영의정을 지낸 오리 이원익이다. 기획재정부에 퇴계 이황, 행정안전부에 율곡 이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연암 박지원, 지식경제부에 다산 정약용이 뽑혔다.

외교통상부에는 개화승려 이동인, 통일부에는 화친파 지천 최명길이 이름을 올렸다.

특임장관 백사 이항복, 검찰총장 정암 조광조, 감사원장에 남명 조식 등의 면면을 보면 이 책의 저자가 그냥 알고있는대로 불러올 수 있는 인물의 등용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30여년의 세월을 두고 조선왕조의 역사를 연구하고 10년이 가깝도록 ‘조선왕조실록’을 통독했으며 그 500년 전체를 조명하는 대하장편 방송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의 집필자이기에 가능한 인사실험이다.

저자는 이 가상정부 인물들의 공통점을 두고, 모두 왕의 잘못에 대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던 올곧은 선비정신의 소유자라고 덧붙였다.

한 문필가가 역사의 기록과 그 기록에 담긴 선현들의 행장을 바탕으로 보여준 이 트림팀 조각(組閣)은 새롭게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 향방에 유익한 본보기가 될 만하다. 대체역사의 교훈이 빛을 발할 시기는 바로 이러한 대목이다. 각료 후보자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그 능력을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를 포괄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옳다.

그런점에서 박근혜 당선인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어느 민족이든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는 발전이 없지만,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할때는 미래가 없다. 지역에 치우친 인사, 친불친에 좌우된 인사를 단행한다면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게 뻔하다.

치열한 당파싸움을 경험한 뒤 합리적 인재등용에 나섰던 조선후기 영조와 탕평책도 반면교사로 삼을만하다.

탕평책은 영조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불편부당’의 정책을 말한다. 탕평은 유교경전인 ‘서경(書經)’의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편무당 왕도평평’에서 나온 용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당파를 둘러싼 당쟁으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1724년 즉위한 영조는 즉각 탕평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숙종사후 왕위계승 과정에서 치열한 당쟁을 경험한 그는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정파간 다툼을 청산하고자 했다.

탕평책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영조는 당파의 시비를 가리지 않고 어느 당파든 온건하고 합리적인 인물을 등용했다. 1772년 당심을 버려야 한다는 취지로 과거시험인 ‘탕평과’를 실시했으며 ‘탕평채’라 부르는 ‘묵청포’는 탕평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처음 올라온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는 탕평책으로 정치 안정을 꾀한 후 경제개혁과 문화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역대 정부에서 언제나 겉치레의 다짐이 되고 말았다. 다음달 새 임기를 시작하는 정권에서는 영조의 탕평책을 거울삼아 선거로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해줬으면 한다.

<고운석 시인·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