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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부모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 한데 요즘 TV나 신문을 보면 부모를 학대한 것도 부족, 무속인을 찾아가 부모가 언제나 죽겠느냐고 상담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부모들이 이와 같이 무서운 아들 며느리에게 얹혀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효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으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이르는 말이다. 까마귀에 대한 인식은 영국을 제외하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로 좋지 못하다.

온통 새까만 생김새와 울음소리가 음침한 느낌을 준다. 사람의 시체도 먹이로 삼는다. 그래서 ‘까마귀 밥이 된다’는 말은 객사(客死·객지에서 죽는 것)를 의미하기도 한다. 까마귀는 이런 이유로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 그런데 까마귀는 다른 새들에게서 볼 수 없는 습성이 있다.

인간이 본받아야 할 까마귀의 습성은 중국 명나라 때 의사인 이시진(李時珍·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한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라고 하며, 극진한 효도를 뜻하는 반포조(反哺鳥)라고도 한다. 겉은 검지만 속은 흰 새인 셈이다.

까마귀와 관련,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진(晉)나라 무제(武帝) 당시, 이밀(李密·224~287)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제가 이밀에게 높은 관직을 내렸지만, 이밀은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했다.

당시 44세였던 이밀은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마저 개가를 하는 바람에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며, 그 때 할머니 나이가 96세였다. 무제는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으로 받아들이며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며 이렇게 진언했다.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

조선 광해군 때 박장원(朴長遠)은 반포조(反哺鳥)라는 시를 남겼다.

연로한 어버이/ 진수성찬도 대접 못해 드리네/ 미물도 사람을 감동시키련만/ 숲속의 까마귀 보면 눈물 흘리네.

이번 설 연휴를 맞아 많은 부모들이 아들 집에서 설을 보내기 위해 역귀성 행렬에 몸을 담았다. 그런데 아들 집에서 할 일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거나, 며느리나 손자·손녀들의 싫은 표정에 눈치를 보지나 않았는지….

설 명절에 마음고생을 한 부모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우리와 달리 1994년 고촉통 총리는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녀를 처벌하는 부모부양법을 만들면서 대국민연설에서 “자식들을 버릇없이 가르쳐 가정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은 미국의 여러 주(州)도 자녀가 부모 부양을 책임지게 하는 법을 갖고 있다.

우리도 마을마다 있던 향약(鄕約)은 1조1항부터 효를 내세웠다. ‘맛있고 진귀한 음식은 맨 먼저 부모에게 바치고 옳고 그름을 떠나 부모의 명을 따라야했다.’ 양반이 어기면 동구밖이나 저자에 죄목을 쓴 팻말을 목에 걸고 서 있게 했고 상민은 태 40대를 쳤다.

최근엔 효도법을 만들자는 논의만 무성하더니 효도교육을 강화하는 ‘효행’을 ‘장려하는 법’을 제정한 걸로 그쳤다. 이 결과 효는커녕 도덕까지도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요즘은 결혼한 자녀는 부가해 나가고 미혼의 막내가 부모를 모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요즘 흐름이다.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노인도 61.8%나 된다. 이런 세태속에서 부모의 설움은 깊어간다. 인구구조화 효(孝)의식 변화에 맞춰 노인에 대한 국가·사회의 정책 배려가 커져야 할 것 같다. 자녀의 효심에 기대 부모를 부양하라고 하기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 버렸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현실에 맞게 완화하면서 가족 해체라는 새로운 사회적 도전에 맞는 사회복지제도를 검토할 때가 됐다.

고운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