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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成語-송양지인(宋襄之仁) 등 2편 (288회) | | | 입력시간 : 2013. 07.22. 00:00 |   |
◆송양지인(宋襄之仁)=宋:송나라 송. 襄:도울 양. 之:갈 지(…의). 仁:어질 인.
송나라 양공(襄公)의 인정이란 뜻. 곧 ① 쓸데없이 인정을 베푸는 것의 비유.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 제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하남성 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출전]《十八史略》《春秋左氏傳》
◆水魚之交(수어지교)=水:물 수, 魚:물고기 어,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물과 물고기처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관계. 친밀하여 떨어지기 어려운 우정이나 교제
劉備(유비)가 諸葛亮(제갈량)을 찾던 三顧草廬(삼고초려) 때의 이야기다. 두번이나 허탕치고 세번째에야 비로소 가까스로 만났는데 사실 關羽(관우)와 張飛(장비)는 처음부터 劉飛가 친히 찾아가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했다.
"일개 촌부에 불과한 것 같은데 사람을 보내 불러 오게 합시다." 張飛의 말이었다. 결국 두번째도 허탕치자 이번에는 關羽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두번이나 찾았다면 예를 다한 셈입니다. 보아하니 諸葛亮은 有名無實(유명무실)한 인물이라 일부러 피하는지 모릅니다. 너무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자 張飛도 이때다 싶어 크게 말했다.
"이젠 정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녀석이 안오겠다면 제가 밧줄로 꽁꽁 묶어서라도 잡아 오겠습니다."
결국 劉飛의 정성에 감복한 諸葛亮은 하산해 그를 위해 犬馬之勞(견마지로)를 다한다. 後에 劉飛는 諸葛亮을 師父(사부)로 모시면서 침식을 같이 할 정도로 극진히 모셨다. 물론 關羽와 張飛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신예인데다가 나이 또한 젊은 제갈량이 더 중요시되고 자신들은 업신여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공명은 27세로 유비보다 20세나 연하였다. 이것을 알아챈 劉飛가 관우와 장비를 달래어 말했다.
"나에게 孔明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 두말없기를 바란다(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 願勿復言)." 이처럼 水魚之交는 본디 君臣간의 관계가 친밀한 것을 비유했던 것이 後에는 친구나 심지어 부부간의 관계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극도로 가까운 사이'를 뜻한다.
[출전]《三國志》<蜀志 諸葛亮傳>
출처/ http://peerhs.com.ne.kr/gosa/go1.html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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