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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 삶의 경륜 | | | 입력시간 : 2013. 10.23. 00:00 |   |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고 유능한 젊은이가 하루는 유태교의 랍비를 골탕 먹이기 위하여 꾀를 냈다. 랍비는 유태사회 지혜의 상징이고 따라서 젊은이가 이들을 시험한다는 것은 대단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첫 번째 물음인 즉 미친개가 쫓아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였다. 선생의 답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었고 , 그러한 답은 젊은이 역시 기대했던 바였다.
움직이는 물체를 무는 개의 속성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두 번째 질문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랍비와 같은 사람이 젊은이들 앞에 오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느냐였다. 선생의 대답인 즉 앉아 있던 사람들 조차 일어서서 존경을 표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 통념상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젊은이는 세 번째 질문을 했다. “그러면 미친개와 선생이 동시에 오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 난처해진 랍비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마침 동네 어귀에 젊은이들이 모여 있으니 자네와 내가 거리로 한번 가보세.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게 아닌가?”
랍비를 골탕 먹이려던 젊은이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져 보기 좋게 미친개로 몰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다소 진부한 내용이지만, 삶의 지혜는 젊은이들의 열정이나 얕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연령중심의 전통사회에서 능력중심의 사회로 전이되는 과정에 있다. 연령이 많은 사람이 경륜과 지혜의 상징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가시적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교직사회 또한 예외는 아니다. 젊은 교사와 경륜 있는 나이든 교사와의 기대역할이 바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젊은 교사들의 ‘지적오만’과 ‘자신만만함’은 더해 가는 반면, 선배교사들의 지혜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가시적인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할 때 경륜 있는 노교사는 생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어와 컴퓨터의 활용,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호연지기에 못지않게 선배교사들의 경륜과 지혜도 필수적이다. 특히 노·장·청의 세 집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교직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젊은이들은 조금 더 겸손과 심사숙고하려는 자세를 갖는 한편, 선배교사들은 그들의 삶의 경륜을 교직사회를 위하여 헌신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이제는 현직 교사들을 위한 복지정책 못지않게 평생을 교직에 헌신한 퇴임교사를 위한 대책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교직발전이 그들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던 바 이들을 위하여 사회가 무언가를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경륜과 교직에 대한 노하우를 현직 교육을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가령, 특기적성 교육의 강사나, 학생들의 상담 역할, 학교 행정이나 수업의 자문, 그리고 봉사활동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삶의 지혜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곰삭듯 인고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륜 높은 선배 교사들의 지혜를 그대로 사장시키기보다는 발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하겠다.
젊은이 역시 지혜 있는 선배교사들의 경륜을 겸손히 수용할 줄도 알아야 비로소 교직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재 <광주교육대학교 前 총장 >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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