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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成語-양금택목(良禽擇木)등 3편 (321회) | ◆양금택목(良禽擇木)◆野壇法席(야단법석)
◆양약고구(良藥苦口) | | | 입력시간 : 2014. 04.14. 00:00 |   |
◆양금택목(良禽擇木)=良:좋을 량. 禽:새 금. 擇:가릴 택. 木:나무 목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는 뜻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김의 비유.
춘추 시대, 유가(儒家)의 비조(鼻祖)인 공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遊說)하기 위해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게 상의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고 했고,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하느니라[良禽擇木而棲 良臣擇主而事]."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공자의 귀국을 만류했다.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더 머물도록 하시오."
공자는 기분이 풀리어 위나라에 머물려고 했으나 때마침 노(魯)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간청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공자는 노구(老軀)에 스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노나라로 돌아갔다.
[출전]《春秋左氏專》《三國志》
◆野壇法席(야단법석) 들 야, 자리 단, 법 법, 자리 석 =씨끌벅적한 상태
野壇은 야외에 세운 단(壇), 法席은 불법(佛法)을 펴는 자리이다. 곧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이다. 굳이 法席을 펴면서까지 野壇으로 하는 까닭은 인파를 법당에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그다지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본디는 寺刹(사찰)의 옥외 집회인데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이므로 괜히 '法席을 떨면서'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野壇法席을 처음 편 분은 釋迦(석가)다. 그가 녹야원(鹿野苑) 동산에서 法席을 폈을 때는 고작 다섯명의 比丘만 참석했다니 野壇法席 치고는 너무나 조용했을 것 같다.
그 뒤 교세가 확장되면서 野壇法席의 기회도 많아졌고 규모도 커졌다. 釋迦가 영취산(靈鷲山)에서 [般若心經]을 설법하자 20만명에 가까운 청중이 운집했다고 하며 [法華經]을 설법할 때는 무려 3백여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엄청난 野壇法席이었던 셈이다.
◆양약고구(良藥苦口)=良:좋을 량. 藥:약 약. 苦:괴로울 쓸 고. 口:입 구.
[원말]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동의어]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
①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간 학정에 시달려온 민중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에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훗날의 한고조)은 역전(歷戰) 3년 만(B.C. 206)에 경쟁자인 항우(項羽)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했다.
유방은 3세 황제 자영(子孀)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자 강직한 용장 번쾌(樊 )가 간했다.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 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오소서."
유방이 듣지 않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張良)이 간했다.
"당초 진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간은 서민이 이처럼 왕궁을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정하시자 재보와 미색(美色)에 현혹되어 포악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於耳利於行], 독약(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의 진언을 가납(嘉納:권하는 말을 기꺼이 들음)하시오소서."
유방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 上:함양 근처)에 진을 쳤다.
② 이 '양약고구'란 말은《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실려 있는데 요약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출전]《史記》<留侯世家>《孔子家語》<六本篇>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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