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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다시 물음표 앞에 서며 | | | 입력시간 : 2014. 05.15. 00:00 |   |
작가(作家) 조정래에 대한 언론의 찬사가 따사롭습니다.
“「태백산맥」의 이념과「아리랑」의 역사를 넘어서서「한강」을 통해 우리들을 민족적 현실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한다.”
“장쾌하게 태백준령을 넘나든 조정래는 유연하게 아리랑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그 끝은 민족의 젖줄 한강이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들춰보고 싶지 않은 아픈 역사의 휘장을 걷어내며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지 모른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닙니다. 미래의 설계 또한 역사입니다.
물론 소설이 역사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설은 역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아직까지 이야기해 주지 못한 것을 말해줌으로써 우리들의 지난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시켜주고 있습니다. 마치 화사한 꽃 주변에 흩어져 있는 퇴비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교육은 역사입니다. 교육자는 역사를 창조하는 당사자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행동이 교실 안에서는 역사가 되며, 아무렇게나 내뱉은 한마디의 말 또한 학생들과 함께 할 때에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가 됩니다. 누구나 교육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끝자락에서 저는 다시 물음표 앞에 섭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당사자로서 나는 올곧은 사도(師道)의 길을 걷고 있는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밝고, 맑게 성장해 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들의 차디찬 손을 비벼주며 진정으로 따스한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지, ‘하면 된다’는 막연한 신념보다는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 주고 있는지, 오늘도 저는 저에게 묻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언행(言行)으로 인한 학생들의 초록빛 역사는 잘 여물어 가는지 묻습니다.
「반(反) Leadership」의 저자(著者) 리차드 파슨(Richard Farson)은 ‘분명한 것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교육이란 어차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추구해야만 하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또한 교육자는 보이지 않는 그 길의 맨 앞에 서서 우리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구체물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성을 안고 있습니다.
무릇 세계의 모든 역사가 그렇듯, 활자화된 역사의 이면에는 더 많은 숨은 역사가 가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명함입니다. 우리 학생들의 야무진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분명함을 찾아주는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수혜자는 당연히 우리 학생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섞여 전남교육의 역사를 ‘분명함’으로 새롭게 기록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희망으로 잉태된 전남교육의 이면을 들춰보면서, 내일 다시 물음표 앞에 서서 저에게 묻겠습니다.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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