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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칼럼>누구나 훈수는 약인가? | | | 입력시간 : 2014. 12.05. 00:00 |   |
충고는 좀처럼 환영을 받지 못한다. 더구나 그것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개인적 문제로 시비의 논란에 서서 힘들었던 한 명사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내가 멘토니 어쩌니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했는데요. 막상 내 문제가 되니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더군요. 절망의 복판에 있을 때 제 팬이었다던 고향 후배가 제게 조언을 하는데 구구절절 맞는 말이에요. 결국 내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지식이 부족하거나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거리 두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더군요”
훈수두긴 쉬워도 선수로 경기에 임하기가 어려운 것은 ‘판 읽기’를 위한 거리 두기가 안 되기 때문이다.
남에게 훌륭한 조언을 제공하면서, 정작 자신(나의 조직)에게 적합한 답을 못 찾는 것도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문제에 갇혀서이다.
특히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가능성에 비한다면 자기 자신은 반 각성상태에 있는 것이고, 자신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작은 부분만 이용하고 있다. 인간은 온갖 힘을 가지고 있으나 대체로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사마우란 제자는 사마환퇴란 폭력배 인물을 형으로 두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살아 있더라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동생으로서 태산 같았다.
사마우는 자신의 심경을 공자가 아끼는 제자 자하를 찾아가 토로한다. 그는 “사람들은 형제를 모두 갖고 있는데 나만 혼자인 것 같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말을 들은 자하는 “사람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자신의 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으며 군자가 공경하여 실수가 없고 사람을 사귀는데 공손하고 예절을 갖추면 세상 사람들이 다 형제라 하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근심 하겠는가”라고 말해준다.
군자의 도리를 다하면 핏줄을 넘어 온 세상 사람이 모두 형제가 될 터이니 외로울 리가 없다고 일러준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자하 자신은 아들을 여의었을 때 너무나도 슬퍼서 우느라 말년에 시력을 잃었다.
남의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것과 내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다.
사실 권투 경기장에 가도 그렇고, 씨름 경기장에 가도 그렇고, 야구 경기장에 가 관중석에 앉아 들어보면 기가 찰 때가 있다. 너무 선수도 많고 감독도 많아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나 감독은 실력 부족으로 집으로 가 애기를 봐야 할 판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남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내 문제를 남의 문제처럼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완전한 유체 이탈’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상하좌우 조망을 위한 자문자답이다.
첫째 위(上)에서 내려다보며 하는 거시적 질문이다. 나(우리 조직)의 초심,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과 현재 부딪친 이 문제는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으며 왜 중요한가를 조감해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아래(下)에서 미시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우리 조직)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어떤 행동, 실수, 계기가 이런 문제를 야기했는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왼쪽(左) 시점, 즉 과거를 돌아가 이와 같은 경우에 나(우리 조직)는 어떻게 대처했던가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右)의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1년 후, 혹은 3년 후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겠는가’란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리더인 당신, 남의 문제에는 ‘훈수의 고수’면서 정작 나 자신 문제에선 번번이 악수(惡手)를 두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셀프 훈수의 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리 두기다. 거리를 두면 비로소 문제에 대한 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헌데도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는데 오직 현명한 사람은 충고의 덕을 본다니 이 또한 받들어야 한다.
/고운석 <시인 >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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