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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지방자치여론 시사칼럼 2편 | (104) 이름은 과연 吉凶禍福일까? 2002-0309<호매광장>
(105) “연변 재중동포 감소는 한국 탓?”2002-03/13<호매광장> | | | 입력시간 : 2015. 11.25. 00:00 |   |
(104) 이름은 과연 吉凶禍福일까? 2002-0309<호매광장>
■ 선조들의 작명과 개명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사주팔자, 관상, 그리고 이름자를 손꼽고, 집터와 묘터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름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름이 평생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양반에 한한 이야기이며, 양반이 아닌 백성들은 개똥쇠 등 아무렇게나 이름을 지었다. 양반이라는 系族의 이름자를 살펴보면, 집안의 돌림자를 제하면 개인의 고유한 이름은 한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은 작명시에 사주팔자는 물론 각종 운세를 꼼꼼하게 따져 가며 오복과 출세를 가져다 줄 좋은 이름을 얻으려 무척 애를 썼던 것이다.
그 과정이 이러했기에 예전 사람들은 이름을 더없이 소중히 여겼다. 이렇게 소중한 이름이지만 예전에도 개명은 있었다. 우선 역대의 왕이나 중국 황제와 이름이 같으면 개명해야 했다. 고려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의 원래 이름은 ‘안유’였으나 조선의 문종과 이름이 같아 후인들에 의해 ‘안향’으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구한말 개화파의 한 사람인 ‘김홍집’은 본명이 ‘굉집’이었으나 중국 황제의 이름을 피해 ‘홍집’으로 개명한 것이다. 영광스런 개명도 있었다. 영남의 유명한 선비 회재 ‘이언적’의 원명은 ‘이적’이었으나 中宗이 그의 선비다운 자질을 높이 평가하여 ‘언적’으로 개명하게 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 개명의 이유
개명의 이유를 살펴보면, 역적과 이름이 일치할 때 개명했다. 선조. 광해군 때의 무신이었던 ‘하경남’은 자신의 이름을 ‘하경호’로 개명한 일이 있었다. 바로 한 해 전에 ‘김경남’이란 자가 반역을 도모하다 처형된 일이 있었는데 그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개명을 했다.
당시에 개명을 위해서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먼저 이조에 개명 신청서를 제출하면 이조에서는 국왕에게 보고한 다음 예문관에 통보하여 개명 인준서를 발급하게 했다. ‘하경남’의 경우는 사유가 워낙 타당하여 신청서에 따라 개명이 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는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이름을 줄기차게 바꾼 경우도 있었는데, 영조때 진주의 ‘하명상’이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본명은 ‘대륜’이었으나 뒤에 ‘즙’으로 개명하였고, 다시 ‘인즙’을 거쳐 ‘정황’으로까지 무려 3번씩이나 개명하였다. 그래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자 마침내 1751년에는 진주 목사에게 진정서를 올려 이름이 불길하여 과거에 급제하지 못함을 호소하고 ‘정황’에서 ‘명상’으로의 개명 사실을 인정하는 확인서의 발급을 요청하였다.
즉 과거에 임박하여 규정된 개명 절차를 밟지는 못해도 목사 재량으로 확인서를 발급해 주면 이것을 가지고 과거에 응시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목사는 확인서를 발급해 주었고, 그 해 가을 그는 ‘하명상’이란 이름으로 무과에 당당하게 급제하였다. 무려 4번의 개명을 통해 얻어진 쾌거였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명상’ 자신만큼은 개명의 효험을 크게 본 사람이다.
■ 우리 고유의 이름
이름은 자신의 대명사에 불과 하다. 최근에도 범죄자들은 개명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렇듯이 아무리 이름이 吉凶禍福과 관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자의 획수에 맞추어 이름을 짖는 모양은 어처구니없다. 그와 반하여 최근 우리 고유의 이름을 짖는 사례는 말없이 친근감을 주고 상큼한 느낌을 준다. 결코 이름이 길흉화복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105) “연변 재중동포 감소는 한국 탓?” 2002-03/13<호매광장>
■ 자치주의 위기
현재 재중 동포는 약 200만명(중국 총인구 중 0.16%)으로 추산되며 주요 거주 지역은 ▶ 연변 자치주(86만), ▶흑룡강성(48만), ▶길림성(37만), ▶요녕성(24만), ▶내몽고(2만), ▶기타(3만) 등이다.
연변의 현지 언론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연변의 재중 동포의 인구 감소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1996년말 연변 총인구수는 약86만명, 그러나 그간 4천 800여명이 감소되었다는 것. 이는 자치주 성립이래 처음으로 하강세를 나타낸 것이다. 재중동포 부부가 아이 하나만 낳으려는 추세로 예측해 보면 2050년에 이르러서는 동포의 인구가 50만 1397명, 2090년에는 19만 4227명으로 감소하게 된다. 만약 아이를 낳지 않는 정황까지 감안하면 인구 감소는 더욱 빠를 전망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조례> 제1장 제2조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 관할 구역 내의 조선족 인민이 구역 자치를 실행하는 곳이다>라는 규정이, 이제는 인구가 해마다 감소되는 전제 아래 계속 <연변조선족자치주>라고 할 수 있는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전통 교육계도 위기
재중 동포의 전통적 교육 체계도 위기다. 도시의 유아교육으로부터 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교육 체계를 이룬데 비해, 다른 방면의 연변의 농촌교육은 위축되고, 그로 인한 전통 교육이 충격을 받고 있다. 1996년말, 용정시 178개 村民 委員會 가운데 촌급학교가 52개뿐이다.
특히 백금향(지명) 중학교는 학생이 36명뿐인데 교원이 16명이나 된다. 이토록 재중 동포의 인구 감소로 한국 고유의 교육정책에도 큰 차질을 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길림성의 예측에 따르면 2003년에 이르러 소학교 학생은 12명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 인구 감소는 한국 탓
노동력의 도시 진출과, 여성의 국제결혼 등으로 많은 노총각들이 결혼 대상자를 찾지 못해 소위 ‘홀애비촌’ 이 나타났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 남녀 성별 비례 실태가 심각하여 初婚인 數가 현저히 줄어들어, 농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식량 생산에도 심각한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노화 현상이 심해져 노년인구부양자 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농촌 인구의 도시 진출 추세 증가 성향은 한국과 같아, 농사일이 저 수입으로 대다수 농촌 청년이 도시로 흘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길림성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연길시 에서 음식업, 오락업 등 봉사 업체에 종사하는 조선족 여성이 3,000여명인 반면, 농촌 총각의 노동 인력은 태부족인 샘이다.
연변의 노동력은 노임과 높은 수입의 자극으로, 대량 한국과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국제결혼의 경우도 한국에 집중되고, 그 다음으로 일본, 미국 등이다. 길림성 통계에 따르면 재중 동포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오는 경우가 1993년의 1,463명에서 1996연말에는 1만 여명으로 늘어났으며, 그 중 연변 동포는 1994년의 1,000여명으로부터 1996연말에는 2,467명, 1997년 상반기에는 974명에 달할 정도다.
연령별로 보면 20-30세가 대다수이다. 길림성은 “한국은, 연변의 빈곤과 홀아비 위기를 전가시키고 있다” 는 것이다. 국제결혼으로 인하여 연변 자치주는 이미 2,000여명의 여성 인구가 감소되고, 비례하여 총각의 인구도 감소될 전망이다.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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