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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칼럼>제발 ‘구관이 명관’이란 말 안 나왔으면 | | | 입력시간 : 2017. 06.23. 00:00 |   |
국가란, 어머니와 같은 것이다. 한데, 지난 6개월은 국가적 ‘무두절(無頭節)’로, 대통령은 없고 공무원은 안 움직이는데도 나라는 돌아갔다. 사실, 꽤 잘 돌아갔다.
1분기에 경제는 0.9% ‘어닝 서프라이즈’ 성장을 했다. 코스피는 역사적 고점(2300)을 넘어섰다.
북핵에 사드 정도를 빼고는 크게 문제되는 일도 없었다. 그게 워낙 큰 문제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런데, 지금처럼 대통령이 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크고 작은 일들이 무수하지만, 특히 2004년 탄핵소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한 정지됐던 63일도 비교적 평온했다. ‘대통령 무용론’이 나올까 노 전 대통령이 긴장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두 번이나 무사히 대통령 궐위 기간을 보내고 나니 이런 발칙한 생각도 든다.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변화를 실감하면서도 ‘대통령이 꼭 있어야 하는 거야?’
내 주변에는 긴 무두절을 보낸 공무원도 아니면서 새 대통령 취임을 심란하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 심란함의 기저에는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다. 새 정권의 등장은 온갖 야단법석을 동반한다.
대통령이 잘해도 어딘가 겉도는 시대정신, 누가 누가 실세라는 소문, 그들이 자천타천으로 흘리는 하마평, 몇몇 무자격 후보자들의 낙마, 공직사회의의 인사 태풍, 어느 지역과 어느 대학 출신이 잘 나간다는 입방아, 그리고 이를 포착해내는 입에 착착 감기지만 품격은 없는 언론 신조어…. 이윽고 허니문이 끝나고 “이 정도 실력이었어?” 하는 냉소와 더불어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슬며시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이 시작된다.
과거 어느 정권도 예외가 없었던 출범 초 풍경이다.
5공화국 이후 7명의 대통령 중 3명은 본인이, 3명은 혈육이 구속되고 나머지 1명은 자살한 우리 대통령제의 비극은 어쩌면 이 출범 초 풍경에서 잉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세등등한 신정권의 자만은 무리수를 낳고, 무리수는 원망을 낳고, 원망은 고름처럼 잠복해 있다 정권 4년차 즈음에 이곳저곳에서 분출한다. 그 패턴이 5년 주기로 되풀이돼왔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다를까. 흙수저 출신 김동연을 부총리로 기용하는 등 인사와 소통이 뛰어나 지지율이 80%가 넘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 성격과 제도가 바뀌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달라지나? 직전 정권에 대한 학습효과는 있지 않겠냐고? 그런 반면교사 7명이 될 때까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래서 이건 하나마나한 얘기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출발이 좋은 문재인 정부에 두 가지만 주문한다.
첫째, 오만 떨지 마라. 점령군 행세는 길어야 1년이다. 우리 국민은 곡절 많은 현대사를 겪은 탓으로 ‘완장’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
겸양은 대통령 혼자서 칼국수 먹고, 돈 안 받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 주변에 완장들이 설치면 그걸로 끝이다.
위세 떨기 좋아하는 자, 억하심정 가진 자, 무능한 자는 쓰지 마라. 그러려면 선거하느라 측근들에 진 빚, 몰려온 폴리페서들에게 한 약속에 뻔뻔해져야 한다.
“고맙다. 그런데 자리 약속은 못 지키겠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라. 그리고 검찰이라는 칼은 웬만하면 쓰지 마라. 언젠가는 그 칼에 베이게 되어 있다.
둘째, 정책은 자기가 속한 이념 지형의 반대 방향으로 한 클릭만 가라.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최대 치적은 미·중 수교다. 닉슨이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소속이었다면 보수 진영 견제 때문에 중국에 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문재인이 김정은 독재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욕할 지지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피터지게 안 싸우고도 좌파 안보 대통령, 우파 복지 대통령 칭송을 들을 수 있다. 이 나라에선 전직 대통령들이 새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지지를 끝까지 유지, 그런 말을 듣지 않기 바란다.
고운석<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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