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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에서는 한 해를 여름, 겨울 두철로 나누었다. 봄이란 말은 16세기부터, 가을이란 말은 14세기의 시인인 초서가 쓰고 있다.

계절을 나타내는 가을이란 말이 없었기에 겨울 속에 꼬리를 끄는 여름, 곧 늦더위나 잔서를 나타내는 말이 많다. ‘작은 여름’, ‘주저하는 여름’, ‘노처(老妻)의 여름’ 등등… 미국에서는 가을 더위나 초겨울 더위를 인디언 썸머라고 한다. 인디언이 꼭 이런 날씨를 골라 쳐들어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인디언처럼 변덕이 심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을이 즐겁고 행복한 계절이다. 무더위가 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오곡백과가 익어 수확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들녁과 산하가 곱게 물들어가기 때문이기도하다. 또 있다. 밤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사나움을 더하면서 이녁집에 살면서도 나그네를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서 잠을 빼앗아 가서다. 지금 무등산에는 오렌지빛 고추잠자리의 천국이다.

날이 다르게 나는 높이를 달리하면서 지난 주말에는 그들이 드디어 서석대를 점령하였다. 잠자리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겁이 없다. 때로 발에 밟히는 경우도 있다.

중봉으로 가는 숲속에 늘 울던 매미와 꾀꼬리 소리도 가을 기운을 타고 있음인지 울음이 멀어지고 있다. 산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구름은 엷어지고 하늘빛이 푸름을 더하고 있다.

서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과 중머리재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이 점차 같은 빛 같은 그늘을 짓고 있다. 산과 도시에 가을 기운이 일고 있는 것이다.

즉 배가 불러오는 행복. 산행을 같이하는 동년배 친구들이 잘 쫓기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필자도 한번은 조선의 폭군 연산군이 잠자고 있는 자리를 지나가다가 그의 머리를 밟고 쫓기는 꿈을 꾸었다. 칠십이라는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이 스스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를 정면돌파하기 위하여 가끔 무등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호기심 많은 사람의 질문에 피하는 일이 없어 젊어 보이지만 “저 칠십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하고 있는 물체보다 열이 발생하면서 무게는 무거워지고 시간은 더디 흐른다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나라는 움직이는 물체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다보니 아무리 움직여도 움직이는 만큼 노인성 시간의 흐름은 더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오히려 요통치고 있다는 느낌과 같이 그 웃소매에 매달려 있는 자기를 본다.

찬 바람이 불면 저 많은 나무에 매달린 잎들도 자기를 볼 것이 뻔하다. 하지만 필자인 나는 언젠가 떨어지는 낙엽이 되고, 저 많은 나무들은 이듬해 봄이 오면 더운 여름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터.

그러고 보면 필자인 내게도 가을은 비극이다. 한데 늦더위나 ‘노처(老妻)의 여름’에서 발상된 것인지 잔서를 ‘늙은 장모의 여름’이라고도 한다.

미국에서 장모 이미지가 대체로 좋지가 않다. 장모에 붙어다니는 형용사만 추려보아도 잔소리 많은 장모, 오만한 장모, 사나운 장모, 심술장이 장모 등 대체로 부정적이다. 우리 한국에 있어 장모 이미지가 긍정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속담에 장모는 사위가 곰보라도 예뻐한다느니, 사위에겐 어머니보다 장모라느니, 기쁜 일은 꿈에 사위본 듯하다하고 반가운 일이면 사위가 왔나 신을 거꾸로 신고 나오게 한다. 장모관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법이다.

여권이 센 나라일수록 가정에 있어 아내→장모의 권한이 세어지고 사위에 있어 장모가 압력존재로 군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여권이 약한 나라일수록 남편→시어머니의 권한이 세어지고 며느리에게 있어 시어머니가 압력존재로 군림한다.

그래서 한국의 시어머니-며느리 사이는 미국의 장모-사위 사이만큼 티격태격한다. 늦더위를 늙은 장모의 여름이라고 호칭한 잠재심리를 알 만하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심리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는지 우리 한국에서 이 늦더위의 따가운 볕을 ‘며느리볕’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늙은 장모의 여름’과 발상이 같을 수 있을까 싶다. 그 증오의 늦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나 시원하고 배불러오는 가을의 문턱이다.

/고 운 석<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