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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3일
이정량의 시기이불시인(恃己而不恃人)
나를 믿고 남을 믿지 않는다

입력시간 : 2019. 04.17. 00:00확대축소


“유사 이래로 외교 활동은 자기 국가의 정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타국의 지지에만 의지하여 국가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자강(自强)’하여 자신의 힘으로 외교상의 주도권을 쟁취해야 한다. 국가가 무능하고 힘이 약하면 외교에서도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는 역대 왕조들과 국위를 비교해볼 때 단연 최강이었다. 위징(魏徵)은 당 태종을 위해 ‘중국이 안정되어 있어야 사이(四夷)가 복종한다.’는 외교 전략을 입안했다. 정관(貞觀) 연간(627~649년), 문무는 조화를 이루어 전에 없던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내는 안정되었고 국력이 부강해졌다. 당 태종이 내세운 외교 전략의 근본은 ‘나를 믿어야지 남을 믿지 않는다’는 ‘시기이불시인(恃己而不恃人)’에 있었으며, 외교를 국내의 안정과 강성이라는 기초 위에서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내정을 개선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등 자신의 힘을 키우는 데 있는 힘을 다 했다.

그런 다음 북방의 강적 돌궐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하고 외부의 중요한 근심거리를 제거했다. 또한 이웃 국가에 대해 덕으로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는 회유 정책을 취했다.

문성(文成) 공주를 장족(壯族) 지역으로 시집보냈으며, 천축·일본·대식(大食) 등과도 경제·문화 교류를 활발하게 가졌다. 이러한 외교상의 성공으로 당시의 수도 장안은 각국의 외교 사절과 상인들로 북적댔다.

이와 아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송나라 때의 외교였다. 총체적으로 송나라는 부패한 왕조였다.

국력이 날로 쇠퇴해감에 따라 외교도 그 성격이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송대의 외교는 자신조차 믿을 힘이 없어, 그저 구차하게 편안함만 추구하고 자강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송은 적으로 또 다른 적에 대항케 한다는 외교노선을 내세워 금(金)과 결합하고 요(遼)에 대항했으나, 결국은 요도 망하고 북송도 망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단연지맹’은 외교 실패의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다.

금나라가 일어나면서 송은 날로 쇠퇴해갔고, 내부의 부패도 더욱 심해졌다. 채경(蔡京)·동관(董貫)은 휘종(徽宗)을 졸라 금과 연합해서 요에 대항하게 했다.

그러나 금의 군대는 연승가도를 달렸고, 송은 계속 패하기만 했다. 금이 요를 멸망시킨 다음 그 기세를 몰아 송의 수도를 함락하니, 북송은 끝내 망하고 말았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 남송이 여전히 무사안일만 추구한 탓에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달렸다. 남송의 이종(理宗)은 국세를 부흥시키는 데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는 금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몽고와 연합하여 금을 멸망시킬 생각으로 먼저 몽고에게 금 정벌을 위한 길을 빌려준 뒤에 몽고와 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몽고가 금을 멸망시킨 후 즉시 남송마저 멸망시킬 줄을!

청나라 후기에도 왕조의 부패로 국세가 쇠약해졌고, 외교 방면에서도 계속 실리를 잃어갔다.

청나라 전기에는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을 굳게 지키는 등 그런 대로 쇄국 정책을 유지했으나, 막판에 가서는 심지어 ‘이적(夷狄)이 될지언정 집안의 노예는 되지 말라’는 극단적인 외교 정책을 취하여 국권을 상실하고 온갖 실리를 빼앗기는 치욕적인 조약을 숱하게 체결했다.

‘전국책’에도 일찍이 주의 관리들이 난왕에게 ‘한·위를 믿고 진을 경시’하지 말 것을 권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실례를 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완(宛)이 진(秦)나라를 믿고 진(晉)을 경시하다가, 진(秦)이 굶주리고 완은 망했다. 정(鄭)이 위(魏)를 믿고 한(韓)을 경시하다가, 위가 채(蔡)를 공격하고 정은 망했다. 주·거는 제(齊)에게 망했고, 진(陳)·채(蔡)는 초(楚)에게 망했다. 이 모두가 후원국만 믿고 가까이 있는 적을 얕보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상하좌우로 훑어서 정(正)과 반(反) 두 가지 방면에서 볼 때, 외교상의 성공여부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요소는 ‘시기이불시인’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자기나라가 부강하지 못하면 외교상의 주도권을 결코 쟁취할 수 없다는 교훈을 절실히 던져주고 있다.

//이정랑 <중국 고전 연구가>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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