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지금 미국 농업계는 내년에 만료되는 농업법(Farm Bill)을 대체할 새로운 농업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미국의 농업법은 농업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담고 있는, 우리로 따지면‘중장기농업농촌종합대책’과 비슷하다. 향후 농업정책의 주요 내용이 모두 담기다보니 모든 농업계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올초부터 많은 공청회, 토론회 등을 여는 동안 정책당국자들과 농민들의 생각이 다소 다르다.

미국은 현재 밀, 옥수수, 콩, 쌀, 면화 등 일부 품목에 상당한 금액의 고정 또는 변동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책당국자은 이 직불금들이 WTO농업협정의 허용보조금(Green Box)에 해당되지 않거나 일정 한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폭 줄이거나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농민들은 현행 직불금 체제를 유지하길 바라기 때문에 DDA 협상이 지연되고 마침내 중단되자 현 농업법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직불금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과수, 채소 농민들은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

정책당국자 “직불금 개혁” vs 농민 “현행 유지”

이러한 농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해서, 개혁을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미국 농업계의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농업도 이젠 내리막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직불금이 없었다면 미국 곡물이 중남미 곡물과 가격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해 브라질이 미국의 면화 보조금을 WTO에 제소해 이겼다. 또 우루과이가 미국 쌀에 대한 보조금을 분쟁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이를 무마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웃 캐나다의 밀이 수입되는 것에 대해 농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과수 농업도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의 싼 노동력이 아니면 타산을 맞출 수 없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처음으로 수입농산물 시장에서 중국 농산물이 미국을 제쳤다. 쌀 수입시장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곳은 중국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농산물부문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얻었지만 지난해에는 겨우 적자를 면했다. 특히 내년쯤에는 사상 처음으로 농산물 무역적자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이처럼 미국 농산물 국제시장에서 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중남미 국가들의 농업이 눈부시게 발전하는데다 중남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규모화를 방해하는 높은 지가 등 미국 농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때문이다.

또 농민들이 높은 소득수준을 유지하려면 농산물 가격을 높게 책정해야 하는데 국제 농업시장의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정부의 직불금 보조를 받아야 하고, 이런 구조가 점점 고착화되면서 미국 농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만일 현재 정책을 유지하면 앞으로 더 깊은 보조금의 수렁에 빠지게 됨으로써 여러 나라로부터 도전을 받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고부가가치·고품질의 안전한 농산물만이 경쟁력의 원천

이처럼 농업 최강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농업학자들은 미국 농업이 살아남으려면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진 자본과 마케팅능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광대한 농지와 싼 임금을 바탕으로 한 저비용구조를 가진 개도국들과 경쟁하려면 경쟁우위 요소들을 적극 활용해 고부가가치, 고품질의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 농업 역시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어느 나라나 농업정책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창 한미FTA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우리가 맹목적으로 품고있는 미국 농업에 대한 환상을 조금은 거둬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