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동북아국제질서가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탈냉전이후에도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오던 한·미·일협력체제가 상당한 균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간의 관계는 마치 냉전체제하의 밀월관계를 복원하는 것처럼 긴밀해지고 있다. 특히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한·일관계의 악화에 대해 미국이 보이고 있는 불명료한 태도는 한·미·일간의 전통적 우호관계에도 적지않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도는 수많은 고지도(古地圖)가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분명한 우리의 영토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제의 침탈로부터 해방된 1945년 동북아지역의 국제관계를 규정하는데 절대적 힘을 지니고 있던 맥아더사령부에 의해서도 한국영해에 포함된 곳이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그들의 우세한 국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빌미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미국이 침묵하거나 더 나아가서 다케시마가 맞다고 호응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 지도국가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의심케하는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외교는 명분보다는 국가간의 이익관계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지금 미·일관계는 전후 그 어느 때 보다도 긴밀한 우호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한·미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적지 않게 나타났던 한·일간의 외교적 갈등과 마찰에 대해 중재자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던 미국이, 이제 확실하게 대일중시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에서 일본의 외교적 재량권은 대폭 확대된 반면, 우리 외교가 취할 수 있는 행동반경의 폭은 상당히 위촉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니게 된 우리의 국력에 비추어 우리 외교가 과거처럼 대미관계의 종속변수에 머물 수는 없으며, 나름대로 선택적 재량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전제가 충족되어야 하는 바, 그것은 중국 또는 러시아 등과 우리의 관계가 더욱 긴밀한 관계로 격상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남·북관계가 보다 확실한 민족공조상태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아직까지 한국외교의 현실은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독도문제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타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의 지지가 확보되어야 하고, 북방 4개도서 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도 일본의 팽창주의를 견제해야주어야 하며 특히 같은 민족인 북한의 경우 더욱 강력한 대남공조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공조는 아직까지 저조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외교는 고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이에 대비하여 안전판을 확보해두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며, 이를 추진할 인재들을 확보해야 한다. 동변상린에 처해있는 국가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해야 하며, 전후좌우에 적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사안의 경중을 따져 적을 최소화해야하며, 거기에는 원교근공(遠交近攻)과 이이제이(以夷制夷) 같은 동양적 지혜도 참고 되어야 한다.

특히 이번처럼 독도문제가 쟁점화 되었을 때만 열 받는 태도에서 벗어나 평상시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끈기가 있어야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것이다. 그러나 뭐라해도 외교의 승패에는 국력의 뒷받침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구소련이 북방 4개도서와 경제협력을 연계할 움직임을 보였던 데 반해 국력이 충실해진 중국이 타오위다오 문제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이번 독도문제를 계기로 하여 우리 국민들이 조국의 미래를 위해 단합하고 냉엄한 국제관계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독도문제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또 한번의 역사인식을 갖게 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오수열 = 객원 논설위원/ 조선대교수·통일문제연구소장/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