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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주택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 초 프랑스 정부는 극빈층의 주거난을 완화시키고 서민들에게 보다 쾌적한 주거를 보장해주기 위해 파격적인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소위 ‘대항력있는 주거권(un droit opposable au logement)’의 입법화다. 이 법안이 2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프랑스 국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주거지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적권리를 갖게된다.

지난해 말 ‘돈키호테의 후손들’이란 시민단체는 파리 세느강가에 150개의 텐트를 설치하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주거환경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의식을 위해 노숙자들과 텐트 속에서 하루밤을 지낼 것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여, 서민주택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주간에 걸쳐 언론과 정치권의 뜨거운 논쟁 끝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2007년 신년연설에서 서민들이 국가에 대하여 주택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경제통계청(INSEE)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일정한 주거를 갖지 못한 사람, 즉 노숙자들은 8만7000명 수준으로, 개인소유 주택 없이 공동시설에 거주하는 사람과 기준이하의 열악한 거주환경속에 있는 사람을 합치면 약 300만명(전국민의 5%)이 주거 난을 겪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주거권’을 국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보장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극빈계층을 비롯한 서민의 주거안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프랑스의 주거난이 이같이 심각해 진 이유로는 8~9%대의 만성적인 높은 실업율과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 에 따른 개인소득감소,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주택임차료 및 주택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등이 지적되고 있다.

'대항력있는 주거권' 이란 무엇인가?

이번에 시라크 대통령이 발표한 ‘대항력있는 주거권’은 2003년부터 활동해 온 대통령 산하 ‘저소득층 주택 마련을 위한 특별자문위원회’ (HCLPD)가 드 빌팽 총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제안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항력있는 주거권’이란 좁고 편의시설이 없는 기준이하의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정부가 주거제공을 해주도록 법원에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법원은 앞으로 구성될 ‘주거관련 중재기관’(1차 책임기관)과 중앙-지방정부(2차 책임기관)이 신청인에게 적절한 주택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관련 기관에 대하여 신청인에게 주택을 제공하도록 하는 명령을 할 수 있다.

‘대항력있는 주거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주거권’ 과의 차이는 정부를 상대로 주거제공을 재판에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보건권(병원 이용권)’에 대해서 시민의 대항권이 인정되고 있다. 드빌팽 총리는 “교육, 건강에 이어 주택에 대한 대항권을 입법화함으로써, 프랑스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가장 앞선 선진국 중의 하나가 된다” 고 강조했다.

한편, 동 법안의 입법 취지에 대해서 사회연대 및 주택 장관인 쟝-루이 보를루(Jean-Louis Borloo)는 “정부가 서민의 주택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서민들의 소송을 장려한다기 보다는, 그 이전에 정부가 서민 주택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임을 강조했다.

정부는 ‘대항력있는 주거권’이 발효되는 시점인 2008년 말 전까지 최저소득층 서민들이 모두 주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2006년 한 해 동안 파리 메트로폴리탄 지역(약 1000만명 거주)에 전 해보다 26% 늘어난 2만1184개의 공공임대주택이 공급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단기적으로 긴급 주거시설 3000개를 추가로 늘리고,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기존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대항력있는 주거권’는 두 단계로 나뉘어 점진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2008년 말부터 노숙자, 저소득 무주택자, 그리고 자녀가 있는 독신 여성들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고, 2014년 부터는 일반서민들을 대상으로 전면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소요되는 예산은 최종적으로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주거관련 중재기관은 지방자치단체에 설치할 계획이다.

주거 대항권이 입법화되면, 주택문제는 정부에게 더 이상 하나의 단순한 정책 목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민에 대한 주택 공급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정부기관이 책임을 지고 ‘벌’(강제적인 예산지출)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안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회의론도 만만치가 않다. 서민주택공급이 해마다 늘어나는 신청자 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에 서민들이 주택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대항력있는 주거권’이라는 법적제도 자체가 주택의 공급확대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에 주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는 달리 시행과정에서 자칫 행정기관이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부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려운 나라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프랑스 정부는 스스로 족쇄를 만들었다.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은 풍경이지만 프랑스가 앞으로 이 제도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 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