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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라는 영화 제목이 범상치 않다. 사전적 의미로 부드럽고 곱고 아름다운 품위를 가리켜 우아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우아하다는 의미는 영화 속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 힘들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숨가쁜 액션만 가득하다.

조폭들의 근거지자 눈요기의 장소인 야간 유흥업소 장면은 어둡고, 삭막하고, 거칠게만 그려진다. 감독이 이런 암울한 배경을 설정한 이유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우리 영화계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느와르 영화가 요즘 부각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홍콩반환이 이뤄지기 전 1977년 7월, 홍콩에서는 영웅본색(1986년) 첩혈쌍웅(1989년)등 느와르 영화가 주류를 이루며 떠나보내야하는 홍콩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느와르 영화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책으로 내세웠고, 이젠 할리우드 속 깊숙이 파고들어 오우삼, 서극 감독 등이 제 몫을 하고있다.

1997년 7월, 반환이 완료된 후 왕가위 감독은 화양연화(2000년), 2046(2004년)등의 작품에 홍콩의 찬란했던 과거를 상기시켰다. 이 영화는 지난날들에 대한 연민이라든가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송강호의 일인 극처럼 보이지만 우리 영화의 현주소를 읽으려는 노력이 장면 곳곳에 숨겨져 있다.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한미FTA는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영화의 자존심인 스크린쿼터가 FTA협상 테이블 위의 협상자료가 아닌 그냥 한미FTA 협상기간 중 무료제공되는 식탁 위의 밑반찬처럼 덤으로 놓여져 자생력과 자구책을 강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무와 숙제만 남긴 채 그들의 큰 입 속으로 거침없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생력과 경쟁력이 미흡한 우리 영화인들만 목청 높여가며 높은 담장을 향해 외칠 뿐이다. 그 소리들 역시 시간이 갈수록 으름장에서 어린아이 투정쯤으로 순화돼 영화인의 목소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영화는 스크린쿼터제가 사라지는 상황을 예견하고 있다.‘우아한 세계’주인공인 송강호를 내세워 투박하지만 처절한 생계형 조폭으로 은유해 보여준다.

전 가족을 유학이라는 실리와 명문으로 현실에서 이주시킨 뒤 주인공 혼자 세상의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처절한 이야기다.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끝까지 우리 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가 영화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처럼 ‘우아한 세계’는 우리 영화를 사랑하는 한재림 감독의 마음이 담았다. 송강호의 어눌한 발음, 손에 들고 찍는 핸드헬드(Handheld)형식의 불안정한 영상들로 만들어졌지만 내면에 숨겨진 진솔한 작가정신은 언젠가는 그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박형균<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