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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가루 팔러 가듯 한다는 말이 있다. 기회를 타지 못하고 일을 하다간 망한다는 뜻이다. 이런 바보는 약으로 못고친다는 말이 따른다. 바람을 역주행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그런데 고대 인도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로 흩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향은 분명히 미친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 분명히 있기는 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좋은일도 하고 나쁜일도 하고, 그물에 걸리지도 않으면서 거침없이 어디든지 간다. 허나 이런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잘 모른다. 이게 참 미묘한 것이다. 사대 가운데 물과 불 보다도 차원 높은 요소가 바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의 풍류도(風流道)는 바로 이 바람을 도의 본질로 여겼던 것 같다. 바람에 대해서 명상을 하다보면 도를 깨닫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제마가 말한 ‘사상체질’ 가운데 태양인이 바람에 해당한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초장부터 그 미세한 조짐을 잘 감지한다. 바람잡이 역할을 한다.

이제마는 태양인이 천이(天耳)가 발달하였다고 하였다. 천이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소리, 즉 바람의 조짐을 잘 듣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태양인이 시대변화의 조짐을 제일 먼저 간파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일본 명치유신의 문을 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나, 구한말 개화파의 대부였던 유대치(劉大致)같은 인물이 이런 태양인이 아니었나 싶다.

바람을 사회적으로 설명하면 민심에 해당한다. 민심은 그 속성이 바람과 같다. 바람 중에서도 가장 센바람은 계절풍도 아니고 태풍도 아니다. 민심풍(民心風)이다.

이 민심풍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그 미세한 조짐을 누가 먼저 감지하느냐가 권력획득의 관건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장자방(張子房)과 책사(策士), 전략가의 제일 자질은 이 민심풍을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이걸 파악하고 컨트롤하기 위해서 천문(天文)도 연구하고, 강태공처럼 주막집과 낚시터를 전전하며 민초들의 여론을 들어보고, 풍수도참을 유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4월 9일 총선을 통해 의정단상에 서보겠다는 호남의 일부 예비후보들이 철학원이나 점(占)집을 찾고 있다. 이 곳 민심풍은 통합민주당 공천이 당선이라는 확신때문에 공천운을 보기 위해서다.

이렇다보니 자신의 영달에만 눈이 어두워 하늘(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왕조 때는 임금들도 민생을 직접 살피기 위해 ‘미복잠행’을 자주 했다.

조선 성종은 청계천 광교를 지나다 다리 밑에서 웅크려 있는 백성을 만났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김희동이었다. 여관을 잡지 못해 다리 밑에서 밤새우던 김희동은 “우리 임금님이 어질고 착하여 백성들이 편하게 잘삽니다. 그래서 해삼과 전복을 임금님께 드리러 올라왔지요. 임금님 사시는 데를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했다.

한국의 대통령들도 민생 살피기에 나선 적은 많지만 ‘미복잠행’은 아니었다. 그제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도 다가구 임대주택 등을 찾아 서민의 애환을 듣는 민생투어를 했다. 신분을 속이지 않고 공개된 민생투어는 대부분 생색내기다. 총선 예비후보들도 홍보용 생색내기를 한다.

그런데 성종이 만난 김희동같은 사람이나 서민들의 목소리를 어이 보고 듣겠는가. 한데 이런 총선 예비후보들을 놓고 여·야가 민심풍 파악을 위해 ‘여론조사’를 한다. 현대 여론조사는 관상도참 같은 옛날 방식을 제압하였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를 한 특정인을 높여주거나 불공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고운석 <시인. 남발협 추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