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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1872년 낙안군 지도엔 특이한 점 한 가지가 발견된다.

낙안읍성 남문앞이며 평촌마을 우측 해자가 돌아나가는 곳에 커다란 숲이 형성돼 있는 모습을 지도는 뚜렷이 표시해주고 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낙안읍성의 비보숲이다.

비보(裨補)이란 도울 비(裨), 기울 보(補)를 쓰며, 인간이 자연환경과 상생. 조화 관계를 맺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풍수 전통이자, 자연과 인간이 이루는 유기적 통합생명의 상호조절원리다.

즉, 우리조상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을 한 몸으로 생각하여 허하고 결함이 있으면 인위적으로 길국을 형성하려 노력해왔기에 낙안읍성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도읍지이지만 남쪽이 광활한 평지로 너무 드러나 기운을 뺏길 우려가 있어 숲을 형성해 가려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곳의 나무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그마한 언덕으로 변하고 잡초만 무성하더니 지금은 집 한 채가 들어서있고 배과수원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숲이 언제 없어지고 왜 그렇게 됐는지 아는 이가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지만 비보숲이 사라진 것은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만약 1872년도의 지도처럼 비보숲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지금쯤 그곳엔 400년은 족히 넘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아름드리나무들이 힘차게 뻗어있을 것이요 언덕배기가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낙안읍성의 좋은 기운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외부로부터의 액운도 막아줬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런데 굳이 풍수지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눈으로 보이는 낙안읍성은 동쪽 서쪽 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인데 남쪽이 너무 휑하게 뚫려있고 벌교까지 7킬로미터가 거의 높낮이가 없는 평지로 연결돼 바람조차도 거침없이 통과하는 지역이다.

물론 그나마 다행으로 벌교와 낙안 중간지점에 옥산이라는 자그마한 동산이 자리하고 있어 가려주고 있다지만 나머지 반쪽 부분은 여전히 알몸을 내 보이고 있는 꼴로 어찌 보면 비보숲이 낙안읍성의 알몸을 가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낙안읍성은 산과 언덕을 배경으로 비보숲을 주위에 잘 배치해 알몸을 보여주는 일을 가급적 자제해왔다. 그만큼 격식을 갖춘 예를 중요시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라져 복원되지 않고 수년전에 당시 읍성장의 지시로 남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해괴한 장승을 낙안읍성 중심부에 세우는 일이 발생해 아직까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얘기들이 많다,

낙안읍성이라는 것이 비보숲까지 만들거나 지형을 이용해 맨몸을 가려 외부에 알몸을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사상과 지역 정서를 무시하고 그것도 누가 봐도 외설적으로 밖에 보일 수 없는 사실적 묘사의 남근장승을 만들어 세웠다는 것에 언짢아하는 입장들이 많다.

더구나 조상들이 남근석이라 부르며 추앙한 대상도 인공적으로 깎아놓은 것을 의미함이 아니며 단지, 자연이 만들어 놓은 형상화된 조각을 의미하는데 지금처럼 사실적 묘사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들은 흔히 말하는 외설에 가까워 남근석의 의미와 정신을 설명하고 얘기하기에 낯뜨거운 부분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낙안읍성의 정서와 맞지 않지만 세워놓은 장승을 함부로 뽑아버린다면 어떤 해가 닥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이란 말들을 전해 듣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거해 버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 듯 보인다

제공: <남도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