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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무성한 신록으로 치닫는데, 송이송이 핀 흰찔레꽃 향기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맑은 향과 다소곳한 모습이 순수한 산골처녀 같아 다가가 한송이 꺾으려니 뾰족한 가시가 찌른다.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을 생각한다.

“...... 어느 악기 위에 우리는 매어 있습니까?/ 어느 연주자가 우리를 손에 쥐고 있는 것 입니까?/오 , 달콤한 노래여”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사랑의 노래여> 중에서-

릴케는 애인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찔린 상처가 덧나 백혈병으로 죽었다. 시인은 지리한 병으로 목숨을 부지하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장미가시에 찔려 죽음조차 느낌표를 찍듯이 시적으로 죽었다.

한국의 토종장미 찔레는 들장미라고도 한다. 전국 산기슭의 양지쪽에 흔히 자라는 가시가 많은 나무이다. 초여름으로 들어서는 오뉴월 찔레꽃 향기는 “잉잉” 대는 벌을 불러 모으고 무심한 사람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우리 선조들은 향기로운 열매를 담아 두고 겨울을 나기도 했고, 꽃잎을 모아 향낭을 만들거나 베갯속에 넣어 향을 즐겼다. 찔레꽃은 ‘열입곱 소녀의 입술 같은 꽃’ 이라며 증류시킨 것은 꽃이슬(花露)라고 불렀다. 신선한 찔레꽃향수로 몸단장을 하였고, 화장품이 없던 시절 처녀들은 꽃잎을 비벼 세수를 하면 미인이 된다고 믿었다.

찔레꽃을 손질하여 꿀이나 설탕으로 재워 한달정도 지나 끓는 물을 부어 마시는 찔레꽃차는 향기가 일품이다. 말린꽃을 사용하기도 한다. 찔레꽃은 당뇨와 이뇨제, 출혈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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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연한 순의 껍질을 까서 먹었다. 떨떠름하면서도 들쩍한 맛이 입안에 “사각사각”거리는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좋은 군것질감이었다. 이것을 지나칠 정도로 먹는 사람도 많았다.

산골이나 사찰에서는 어린 찔레의 순의 껍질을 벗긴 후 간장, 고춧가루, 깨, 참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살살무쳐 먹었다. 봄에 막 올라오는 찔레순 겉절이는 채소와는 또 다른 맛으로 사각거림이 기억된다. 식물의 성장 호르몬이 풍부한 찔레순은 흑설탕이나 꿀에 재워두었다가 먹으면 어린이의 성장발육, 혈액순환에 좋고 변비, 수종, 어혈 같은 것이 없어진다고 한다.

찔레는 흰꽃이 지고 나면 붉고 큰 열매가 열리는데, 한방과 민간에서는 꽃과 열매를 약용으로 썼다. 찔레나무 열매는 영실(營實)이라는 약용식물. 복막염에 효과가 있고, 찔레나무나 장미나무 뿌리는 곪는 상처를 낫게 하는데 특효가 있다. 이 뿌리는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병인 버거씨병과 관절염, 산후풍 등을 치료하는 데 좋은 약이다. 릴케가 장미 뿌리를 달여 먹었다면 백혈병에는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 우리는 더 많은 그의 시로 아름다운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찔레술을 담가보자. 찔레꽃이나 열매 200~300g,소주 1ℓ, 얼음설탕 5~10g을 준비한다. 꽃잎은 젖은 헝겊으로 살짝 닦아 투명한 병에 꽃과 소주, 설탕을 넣고 밀봉하여 6개월 이상 숙성시킨다. 술을 담그고 걸러낸 꽃잎은 설탕을 쳐서 말리면 맛있는 과자가 된다.

열매는 약간 덜 익었을 때 따도록 하고 낱개로 따는 것보다 가지 채 따는 것이 좋다. 찔레열매술은 1년이상 숙성시킨 후 마시는 것이 좋다. 카엔페롤이라는 유효성분이 들어있어 이뇨, 변비에 효능이 있다.

‘먹거리의 역사는 굶주림의 역사’이다. 먹거리가 넘쳐나 병이되는 시대에는 예전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최고의 자연식, 건강식이다. 오뉴월 해는 길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먹었던 찔레순, 칡뿌리, 오디 등을 요즘 아이들은 알리가 없다.

찔레순을 입에 넣는다. 먹을 만했던 ‘주전부리감’ 은 풀냄새와 떨떠름한 맛이 예전의 맛이 아니다. 세월과 기름진 음식에 길든 내 입맛의 변화가 찔레꽃 앞에서 무색하다.

김정숙 (논설위원.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