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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도 '정율성' 기념사업회 생긴다. | 화순군 시민단체, 하동 정씨 등이 앞장선다
"중국 관광객들의 선호 관광지 만들 터"
| | | 입력시간 : 2008. 06.09. 00:00 |   |
 | 지금은 사라진 1930년대 목사골 능주관아<화순군제공> |
| 중국의 대 음악가이면서 중국인민들로부터 영웅으로 추대 받고 있는, 한국의 광주가 낳은 '정율성'의 추모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교와 유년기 시절을 보낸 화순군 능주면은 정율성이 독립운동의 의지를 갖게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선생의 고귀한 뜻을 높이 기릴 '정율성'기념사업이 화순에서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화순 토박이인 윤모씨는 "중국의 관광객 유치와 선생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념사업을 위해 이와 같은 단체를 화순의 뜻 있는 인사들과 협의해서 발족할 계획" 이라고 밝히고, "그 대상으로서 화순 유지급 들이다."고 밝혔다
정율성은 광주에서 태어나 성장기인 초등학교 시절은 능주면 관영리에서 부모들과 같이 거주하면서 능주 초등학교를 다닌 기록이 있어 사실상 능주에서 약 8년 정도를 지낸 샘이다.
그러나 정율성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광주 남구청과 정씨 종친회는 서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곳이 출생지라고, 법적인 분쟁까지 하고있는 마당이지만, 화순 능주의 유년시절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어 분쟁 없이 기념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화순군은 능주초등학교에 군의 예산으로 기념비가 세워질 예정이며, 이로 인하여 해마다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중국에서 건너온 '주자'선생사당과 조선의 유명한 혁명가 '조광조' 유배지, 그리고 능주 초등학교를 관광벨트화 하여 많은 중국관광객의 유치를 위한 계기가 만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화순에서 중국의 관광객들이 묵어 가는 계기를 만들고, 화순은 중국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여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율성은 오늘날 중국의 準國歌,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으며, 1918년 전라남도 광주의 한 혁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3년, 15세 소년 정율성은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에 온몸을 던졌다.
1937년 3월, 그는 혁명의 성지 옌안으로 들어가서 루쉰(魯迅)예술학교 음악학부에 입학하였으며, [아리랑의 노래] 김산이 비명에 간지 두어 달이 지난 1938년 봄 어느 날. 루쉰 예술학교 강당에서는, 마오저둥과 저우언라이, 주더(朱德) 등 수뇌부가 전부 참석한 음악회가 열렸다.
정율성은 만돌린을 타면서 한 여자 소프라노 가수와 함께 "연안을 노래한다" 라는 혼성이중창을 불렀다. 마오저둥을 비롯한 전 청중은 노래가 끝나자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와 같이 정율성은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게 한 곡을 수없이 작곡한 중국 최대의 작곡가로 중국인들의 마음에 깊이 색인되어 있는 중국의 영웅이다.
따라서 이를 관광 자원화 하여 많은 중국인들이 정율성선생의 유년기를 지낸 화순 능주를 찾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할 것이다.
최재승 기자 jachi2580@hanmail.net 최재승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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