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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나물인 씀바귀. 산야에 흔한 야생채소로 훌륭한 영양식품이며 인체의 신진대사에 활성을 준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씀바귀 소비국이다. 씀바귀나물과 씀바귀김치 즉 고들빼기 김치는 별미로 남도지방에서는 상비해 두던 찬이었다.

“쓴 것이 입에는 쓰나 비위에 역한 법은 없다. 사람이 五味중에 쓴 것을 덜 먹으나 속에는 대단히 좋으므로 약재로 쓰면 유익하다. “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적고 있다.

씀바귀술은 진정효과와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건강주이다.

씀바귀즙은 그냥 먹기에는 쓴맛이 강하므로 설탕을 넣어 먹거나 사과나 당근을 함께 갈아먹는다. 요즈음에는 씀바귀가 건강에 좋다고 하여 고기 먹을 때 상추나 쑥갓 등의 야채와 함께 싸먹기도 하는데 쌉쌀한 맛이 소화촉진에도 도움이 된다.

봄에 씀바귀나물을 많이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다. 또 오장의 사기(邪氣)를 제거하고 심신을 편히 하며 악창을 다스려 ‘천정채(天淨菜)’라 일컬었다.

프리니우스의 ‘박물지’에도 씀바귀는 씹어서 입 냄새를 없애고 뇨 속의 결석을 녹이며, 부인들의 분만을 돕고 젖이 많이 나게 하는 민간약재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씀바귀는 가을에 씨앗이 떨어져 겨울에 싹을 틔운 뒤, 눈 속에서도 푸른 기운을 유지한다 해 유동이라고도 한다. 겨울날 먼 길을 갈 때 밭두렁의 눈틈에 푸릇푸룻한 씀바귀를 보면 뜯어다가 얼음물에 헹궈 날로 먹었다. 씀바귀를 먹으면 추위를 덜 탄다는 속방이 있어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흥분엔 쓴 음식이 약이라는 점이다.

쓴맛은 심장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을 내리게 한다. 맥주가 다른 술 보다 시원한 느낌이 들고 취한 후의 회복이 빠른 것도 맥주가 쓴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매운 음식은 입을 벌려 열을 위로 발산 시키려 하지만 쓴 음식은 자꾸 침을 삼키게 되는 것도 이러한 원리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나중까지 남는 것은 미각이요, 입맛의 전통성은 쉽게 바꿔지는 것은 아니다. 한 접시의 음식도 자연과 인간의 정성과 사랑을 토대로 맛을 빚어낸 것이다. 한국인이 유독 쓰디쓴 나물을 좋아하는 것은 외적의 침입과 전쟁, 가난과 수탈의 역사에서 속으로만 삭힐 애끓는 일이 많아서 였을까?

씀바귀는 음식 재료로만 쓰인 것이 아니다. 과거를 앞둔 서생이나 부모 머리맡에서 간병하는 효자들에게 잠은 그야말로 수마다. 이럴 때 잠을 쫓는 가장 친근한 처방으로 씀바귀즙을 내 먹었다.

중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미젖을 먹이기 전에 오향(五香)이라는 다섯 가지 맛을 보인다. 맨 먼저 초 한 방울을 핥게 하면, 아이는 얼굴을 야릇하게 찡그린다. 이어 소금을 핥게 하고, 씀바귀를 자를 때 스며 나오는 하얀 젖 빛깔의 즙을 입에 떨어뜨린다.

씀바귀의 쓰디쓴 맛의 원천이 바로 그 뽀얀 유즙에 있으니, 아이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울어댄다. 그 다음이 가시나무에서 가시를 따 와 아이의 혀끝을 살짝 찌른다. 그렇게 울고 난 다음에야 달디 단 사탕을 핥게 한다.

미국 선교사가 이 중국 농촌의 오향습속을 보고 신생아 학대의 원시적 유속이라며 악습 폐지를 역설했다. 이에 임어당이 “서양 문명의 인생을 보는 한계를 그로써 볼 수 있다”고 비꼰 적이 있다.

성인이 되기까지 신 맛, 짠 맛, 쓴 맛. 아픈 맛을 맛보고 그를 감내하지 않으면 인생의 단 맛은 알 수 없다는 음식철학이다. 이때 인생의 쓴 맛으로 씀바귀가 선택된 것은 우리 식생활 주변에 가장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쓴 음식이 씀바귀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국제정세는 분통 터트리게 하는 일이 많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대처하려면 온 국민이 심장기능을 강화하는 씀바귀나물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

김정숙 (웰빙 논설위원.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