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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17일 이른 아침 5강(한강, 동작진, 마포, 서강, 양화진) 각처에 주둔해 있던 일본기병 780명, 포병 4, 5천 명, 보병 2, 3만 명이 모두 경성에 입성했다. 하오 2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의정부대신 한규설,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법부대신 이하영, 탁지부대신 민영기 등을 일본공사관으로 불러 자신들이 제기한 5개조에 조인할 것을 요청하였다. 한규설 등은 모두들 변함없이 ‘불가’라고 완강하게 말했다.

결국 모두 입궐하여 어전회의를 열었으나 역시 결론은 같았다. 수옥헌(漱玉軒)의 고종은 지척에서 겹겹이 포위되었고 총칼로 철통같이 경계하면서 이토 히로부미는 황제가 이미 협의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하면서 대신들에게 회의를 재소집할 것을 요구하였다. 끝내 회의 속개를 거부하는 참정대신 한규설은 골방에 가둬놓고 나머지 대신들로만 회의를 소집하였다. 이때 이하영, 민영기는 여전히 ‘부(否)’를 쓰고 날인을 거부하였으나 이완용은 "만약 약간 자구를 변개한다면 인준하겠다."고 하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결연히 붓을 잡고 "그렇다면 마땅히 변개하자" 하고는 내키는 대로 두세 곳을 고쳐 다시 가부를 물었다. 이에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 5인은 똑같이 ‘불가불가(不可不可)’라 쓰고 날인한 다음 옥쇄까지 날인하였으나 조약을 선포할 때는 ‘불가불 가(不可不可)’로 읽었다고 한다.

띄어쓰기가 없는 한문의 특성을 이용하여 ‘가(가)’ 하면 될 것을 불가(불가)를 두 번이나 써서 강경하게 부(否)인 척 하고는, 옥쇄를 날인한 다음에는 ‘불가불 가(不可不可)’라 읽어 찬성의 흉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을사오적은 탄생했다.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문서도 마찬가지다. 검역 주권을 강화했다고 큰소리치길래 전수조사나 미국 도축장의 승인이나 취소권한이라도 가져온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거꾸로 검역주권포기 각서를 한 번 더 쓰고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WTO와 한미FTA에도 위배되는 민간자율방식의 QSA 프로그램을 그것도 양국 정부간에 "논의(discussion)"만 해왔을 뿐인데, 이를 추가협상이라 우기며 도리어 검역주권을 강화했다고 기자회견하는 것을 보는 순간 을사오적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엉터리 QSA 프로그램도 한국정부의 고시가 확정되어야 미국서 시행하겠다고 하니 우리가 먼저 서둘러 고시할 수밖에 없었단다. 한마디로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사기극과 기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4월 18일의 협상내용이 미국농무성의 사료조치 강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농무부에서는 버젓이 사료조치를 완화한 내용을 고시하고 있었던 점이나, 2006년 수입위생조건에서는 모두 수입금지 품목이었던 혀, 곱창, 분쇄육, 회수육(AMR) 등이 이번에는 모두 수입되게 된 점 등은 ‘불가불가(不可不可)’라 써놓고는 어느 순간 ‘불가불 가(不可不可)’라 낭독하는 을사오적들이 하던 짓을 거침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고시는 한미FTA 체결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주권을 포기하라고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미국과 이에 편승하여 ‘불가불 가(不可不可)’라 외치고 싶은 이명박정부의 합작품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이 100년이 지나 국민주권을 팔아먹은 무자육적(戊子肉賊)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김상집 <참여연대21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