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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박사의 '감동의 나라 中國'(35) | ◆중국에서 온 진주 강(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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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진주 강(姜)씨
강이식(姜以式)은 진주 강씨의 시조로 고구려 영양왕 때의 장군이다. 남북조시대로 나뉘어져 혼란하던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문제(文帝)는 외부로 눈을 돌려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품고 조공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도발에 분노한 고구려는 먼저 선제공격을 하게된다. 영양왕은 강이식장군을 병마원수(兵馬元帥)로 삼아 5만의 기마병을 이끌고 출전하여 수나라 영주성까지 밀고 나가게 되었다. 영주총관 위충의 군대는 강이식 장국과 일전을 벌였으며 강이식 장군은 대승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 후 강이식 장군은 기마병 1만과 보병 5만을 휘하에 두고 임유관으로 출전하여 수나라 문제의 30만대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어(영양왕8년)이에 수나라 문제는 결국 철군하게 된다. 612년(영양왕23년)에 수양제는 113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재 침공하는데 이때 강이식장군은 수륙양군병마도원수(水陸兩軍兵馬都元帥)가 되고, 왕제 고건무는 해상을, 을지문덕은 육상을 맡아 대항하였다. | 媛뺤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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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별동대 30만 대군을 전멸시키자 사기가 꺾인 수나라는 또 한번 철군을 서두르게 된다. 묘는 만주 심양현 봉길선 원수림역(요녕성 무순시 고려 영자촌) 앞에 있으나 중국 문화혁명 당시 크게 훼손되어 지금은 거북 좌대만 남아있다.
묘비 또한 훼손되어 강이식장군의 사망년도는 알 수 없다. 얼마 전 연개소문이란 드라마에 수나라와 전쟁할 때 병마도원수로 나온 인물이 강이식장군이다. 그는 진주강씨의 시조로 수나라 초기에 고구려에 귀화한 사람이다.
강씨는 원래 중국 삼황오제인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에서 강(姜)이란 최초의 성이 탄생된다. 그 뒤 황제헌원씨가 희(姬) 성을 그 뒤 요(姚), 사(?), 규(?)가 나오고, 100개의 성이 만들어지면서 백성(百姓)이라 한다.
우리말로 백성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함석헌선생은 백성을 ‘씨알’이라 하여 ‘씨알의 소리’란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중국 호북성 수주시 염제릉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염제(炎帝)가 태어난 곳은 호북성 수주시이고, 살았던 곳은 섬서성 보계(寶鷄)시이며, 묘는 곳은 호남성 주주시 염릉(炎陵)현에 있다. 산동성 치박시 임치현이 있다. 이곳은 강태공(姜太公)이 치수(淄水)에 임해서 제나라를 세워 수도를 임치(臨淄)라 하였다.
진주강씨들은 염제릉이나 산동성 치박시에서 강태공 제사에 참배한다. 2008년 강태공 탄생 3147주년 행사에 진주강씨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강이식(姜以式)장군은 고구려의 병마도원수로, 597년 수나라 문제(文帝)가 지성과 충절을 소홀히 한다는 내용의 국서를 고구려에 보내오자,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30만의 수군을 대파하여 무공을 세운 명장이다.
강이식장군의 비석이 중국 요녕성 무순시 고려 영자촌에 몸통은 없어지고 받침대만 남아있다. 고려 거란 3차 침입 때 병마도원수 강감찬 장군과 부원수 강민첨 장군 등이 모두 진주강씨이다.
◆著者 姜元求 박사의 프로필
現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 .現광주여행문화원 원장/現 중국 심양시 명예시민/ 前 전국시도관광협회연합회장/前 광주광역시관광협회장/ 前 광주권발전연구소장/前광주상아탑학원 원장
연락처 : 한중문화교류회(062)652-8800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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