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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 부잣집의 가훈
2008년 12월 03일 00시 00분 입력
경주에 가면 전설이 있고, 역사가 있으며, 토함산과 계절의 빛깔을 토해내는 남천이 흐르고 있다. 얼마 전 경주를 찾았을 때 천년의 고도(古都)다운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경주하면 불국사이고, 불국사하면 경주로 알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불국사는 물론 석굴암과 왕릉들을 찾아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역사와 불사의 흔적을 보기 전에 진정한 삶을 살았다던 경주시 교동에 자리 잡은 최 부자 집이라는 솟을 대문을 찾게 되었다.
대문에 들어서니 60년이나 그 집을 관리하였다는 할머니 한분이 계실 뿐이다. 종부 할머니께서는 두 해전에 95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 앞을 보니 솟을 대문 옆으로 큰 집이 보여 “저 집은 무슨 집이냐” 물었더니 그곳은 쌀 800석이 들어가고도 중앙으로 소 구루마가 들어갈 만큼 큰 곳간이라 하셨다.
과연 듣던 대로 400년(12대) 간이나 명문 부호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현실을 보는 듯하였다.
우리는 흔히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성경에는 사람이 재물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잠시 맡겨 두신 것이라 한다. 성경의 말씀이 옳은 것 같다. 필연적으로 사람이 흙으로 돌아갈 때는 가지고 있던 재물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물 뿐만은 아니다. 권력과 기술과 학문과 재능까지도 이웃을 위해 유익하게 베풀라는 의미로 인간에게 달란트를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이웃을 위한 유익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는 한다고 해도 매우 소극적일 뿐이다.
그러나 경주의 최 부자 집의 가훈의 유래는 현대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특히나 오늘날의 재벌들과 비교할 때 재산의 가치로움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흔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 부잣집의 가훈을 보면, 벼슬은 진사이상은 하지 말라. 농토는 만석지기 이상은 늘이지 말라. 흉년에는 절대로 토지를 매입하지 말라. 시집 온 며느리들에게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이다.
생각할수록 재물이나 벼슬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고 남의 곤경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비열한 행동을 삼가 하여 남들로 하여금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집안 여인들에게 근면하고 검소함을 몸에 배도록 하는 가정교육을 시켰다는 흔적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가훈이라 생각된다.
관리하는 할머니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옛날에는 숙박시설이 변변치 못해 이 집을 찾는 길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독상으로 대접하고, 혹 먼 길을 떠나는 길손에게는 양식과 노자를 주어 보냈다는 것이다. 참으로 진정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재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갑자기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솟을 대문 안의 온정(溫情)이 400여년이나 지속되었다 하니 훈훈함이 지금도 묻어나오는 것 같다. 돈을 주고 권력을 사려는 사람들,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모으려는 사람들 솟을 대문 안에 들어가 최 부잣집의 가훈을 배워 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서길웅 <서강전문학교 학장>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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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