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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찬미 최한선 칼럼 2009년 01월 11일 00시 00분 입력
무엇이든 새로운 시작은 잔잔한 때론 커다란 떨림을 동반하기 십상이다. 시작은 희망을 동반하기에 꿈을 꾸게 한다. 신년의 꿈은 무엇인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꿈이 거창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꿈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함이 담긴다. 사대부의 경우, 글을 열심히 읽어 과거에 급제하면 경국제민 곧 나라를 잘 경영하여 백성을 가난과 역경에서 구제하는 일을 꿈으로 여겼던 사람들이었지만, 정치 현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어렵게 되면 곧바로 전원(흙)으로 돌아가고픈 새로운 꿈을 꾸기 일쑤였다. 꿈은 시대 상황이나 당면한 처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인데 조선시대 정치가 어수선할 때 수많은 벼슬아치들이 귀거래를 꿈꾸었던 풍조가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그런데 귀거래의 원형은 대체로 중국 동진(東晋) 시절 벼슬에 염증을 느껴 고향으로 돌라가고픈 꿈을 가졌던 도연명이 마침내 꿈을 이뤄 벼슬 대신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데서 찾곤 한다. 벼슬살이와 농사는 매우 다른 일이건만, 꿈은 그런 격차를 가리지 않는다. 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이마를 스치면 고향의 순채 나물과 농어회가 먹고 싶었던 장한(張翰)이란 사람 또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을 고향의 산천 풍물과 더불어 사는 꿈을 이루었다는 일화는 좋은 예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든 도연명이나 장한이든 그들이 꾼 꿈은 모두 전원(흙)으로의 회귀였다. 회귀라 했거니와 왜냐하면 우리 생명이 본래 전원 곧 흙에서 왔기 때문이다. 왜 뜬금없이 흙을 가지고 새해 벽두부터 소란을 피우려느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런 데에는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금년은 기축년 소띠 해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 성장, 소멸을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주역>의 팔괘를 보면, 소는 곤괘(坤卦)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곤은 다름 아닌 땅인데 사람에 비기면 어머니라는 것이다. 어머니, 영원한 꿈의 고향이요 희망의 자궁인 어머니가 곤괘의 의미라니 새삼 땅의 위대함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서 땅은 곧 우리 생명의 창조자인 어머니이기에 거슬림이 아니라 순(順)인 것이다. 그래서 땅에서는 온갖 생명을 키우며 희망을 싹틔우는 것일까? 곤괘는 신체로 말하면 배에 해당된다고 한다. 배가 어떤 곳인가? 바로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고 자랐던 곳 아니던가? 요컨대 <주역>의 곤괘가 상징하는 의미는 사물로는 땅, 사람으로는 어머니, 덕으로는 순, 동물로는 소, 신체로는 배에 해당하는 이른바 모두 ‘창조’의 다른 말임을 알게 한다. 곤 곧 땅이 창조라면 땅의 주체는 바로 흙이 아니던가. 그렇다. 요 몇 십 년,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우리는 흙에 대해 너무 소홀했음이 분명하다. 어느 흙이 씨앗을 마다하겠는가마는 사람들이 된다 아니 된다 하면서 제풀에 꺾이어 그저 흙을 무시했음에 오늘의 경제 위기와 환경오염 등을 부채질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굳이 이 자리에서 흙의 소용을 따져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인간 생명의 근저를 이루는 네 원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 가운데 흙이 가장 먼저인 것은 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곤괘가 가리키는 방향인데 우리 남도는 지도상 어느 방향인가? <주역>은 말한다. 서남 방향은 어머니요, 배이며 충실한 동물인 소에 해당한다고. 금년은 소의 해, 바로 남도의 해가 아니고 무엇이랴! 황토든 갯벌이든 흙을 바탕으로 사는 우리 남도사람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올해부터라도 우리 흙을 보루와 창으로 삼아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신나는 꿈을 꾸어 보는 것이 어떤한가?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 기사 목록으로 ]  [ 프린트 서비스 ]  [ 메일로 보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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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