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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세월의 무게
2013년 03월 20일 00시 00분 입력
넓은 가을 들녘의 모습을 좋아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들녘을 보면 넉넉한 어머니 품안이 생각난다. 황금물결 출렁이는 가을 들녘은 보기만 해도 내 가슴을 여유 있고 풍요롭게 만든다.
특히 잘 익은 벼의 모습은 세월의 무게를 느기게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개 숙임인가?
무더운 여름 내내 목마름도 뜨거움도 침묵으로 일관한 인내의 끝에 영그는 열매를 맺었고, 마지막까지 임무를 다하느라 무거워진 몸을 고개 숙여 감당한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자연은 고귀한 ‘세월의 무게’라 생각한다. 연두빛 꿈으로 시작되는 봄부터 세상을 깨끗하게 감싸주는 흰눈 내리는 겨울까지의 세월이 주는 변화를 더 가까이 감상하고 관조하려고 여행을 떠나며, 그 고매함에 늘상 찬사를 보내게 된다. 어느 새해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역에 갔다.
어둠을 가르는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가슴 조이며, 찬란한 자연을 환호했고 각자의 새해 소망을 빌엇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자꾸자꾸 작아지는 내 자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는 세월의 무게를 찬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 일상의 삶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는 어떠한가?
우리는 자연의 무게에 대해서 넉넉한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느끼는 세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 남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 삶, 자신의 귀한 삶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삶 등 세월을 잘못 영위하고 너무 가볍게 보내는 사람도 있다.
특히 많은 세월 동안 일하다 이제 편히 쉬어야 하는 노인들의 문제! 이 분들에게도 힘든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장수의 나라하면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는데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우리 나라도 어느 덧 장수 나라가 되었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생성되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노인의 취업 문제, 복지와 생활 문제, 효의 개념, 핵가족화, 세대간의 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새롭게 제기된다.
얼마 전 어머니와 동반 자살한 어느 중년 남자의 이야기, 양로원보다는 노부모를 강원도 어느 외진 아파트에 모신다는 뉴스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노부모를 모시지 못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름대로 절실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그런 대우를 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몹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뉴스를 자주 접할 때면, 우리 나라를 가리켜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제 엣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이겠지만…….
사랑은 많이 받아본 사람이 도 다시 베풀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이나 신에게 많은 사랑을 이미 받았다. 이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베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은 이처럼 우리들에게 혼신의 힘으로 사랑을 베푸는데, 우리들은 너무 이기적인 생각에 가득 차 잇지는 않은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시간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귀한 세월을 이기적이고 안일한 삶 속에서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세월의 무게를 지닌 자연이 아름답다면 그 자연을 영위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도 아름다워야 한다.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는 사회는 노인들의 행복을 느끼며, 살기 좋은 아름다운 사회라고 확신한다.
/이정재 <광주교육대학교 전 총장 >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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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