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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적 아들 우장춘과 ‘수박’
2013년 07월 19일 00시 00분 입력
씨 없는 수박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장춘 박사를 떠올린다.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우 박사가 역적의 아들이란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寓範善·1857~1903)인데, 1895년 8월 20일 새벽.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浪人)들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이다.
을미사변 직후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그는 1903년 한국인 고영근에게 암살당했다. 당시 여섯 살이던 우범선의 장남이 바로 우장춘(1898~1959)이다.
그렇지만 ‘한국 농업의 선구자’이자 세계 유전학의 기류를 바꾼 농학자였다. 1950년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둔채로 한국에 왔다.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뒤 정부가 농업발전을 위해 그의 귀국을 추진하면서 ‘우장춘 박사 귀국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서다.
그러나 1950년대 한국에서의 삶은 지지와 반목으로 구성됐다. 한국인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농학자이며, ‘역적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무우, 배추를 비롯 씨 없는 수박을 보급한 우장춘은 죽기 전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한데 일부 학자들은 ‘씨 없는 수박’을 두고 폄하하고 있다. 요지는 닭은 우는게 생명이다. 한데 대량생산하는 양계장에서는 소음공해라 하여 울지 않는 닭을 만들고 있다 한다.
인간의 잔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잔인할 정도로 동물을 학대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울지 않는 닭이 동물학대라면 씨 없는 수박은 식물학대란다. 염색체 수가 보통보다 3배체가 되면 씨가 없어진다는 유전학을 응용, 씨 없는 수박을 만들거나, 방사선이나 약품으로 염색체에 변형을 일으켜 씨 적은 수박을 만들고 있다 한다.
그러나 손오공이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바닥 위를 못 벗어났다 하듯이 사람의 꾀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울지 않게 한 닭이 낳은 알은 난황(卵黃)이 한결 작고, 씨 없는 수박은 껍데기가 두꺼운데다 공동(空洞)이 드문드문 생기며, 씨 적은 수박은 당도가 떨어져 상품가치가 없다.
우리 옛 문헌에 보면 수박을 많이 먹거나 빨리 먹으면 배탈이 나고 설사를 하며 유독하다 하여 천천히 조금만 먹게끔 조물주가 적당하게 씨를 넣어둔 것으로 오히려 수박의 씨를 긍정적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수박은 94퍼센트가 물이요, 박 속에 담은 물이라 하여 수박이다.
옛날 설화에 샘가에서 처녀가 목마른 장수에게 물을 떠 바칠때 버들잎을 띄워 바쳤던 지혜와 수박 속의 씨는 일맥상통하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인 것이다.
아프리카 원산인 수박이 동양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글안에 가서 포로생활을 했던 호교(胡嶠)의 ‘함로기(陷虜記)’다. 글안의 서역(西域)의 돌궐족을 정복했을 때(서기 840년) 수박씨를 가져와 심었다 했다.
그 수박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고려 충렬왕 때로, 고려를 배반하고 원(元)나라에 붙어 그 앞잡이가 되어 삼별초를 멸망시켰던 홍다구(洪茶丘)가 원나라에서 개성(開城)에 옮겨다 심은 것이 최초라 한다. 반역자가 전래시킨 과실인 데다 북변(北邊) 오랑캐나 먹는 과실이라 하여 고려말이나 조선초의 선비사회에서는 수박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겼던 것 같다.
옛 문장에 “수박 한 조각 입에 대지 않았다”함은 선비의 조건을 지켰음을 뜻하였다. 그 후 ‘연산군 일기’에 보면, 명(明)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마다 수박을 구해오도록 하명한 것으로 보아 수박이 우리나라에 보급이 더디었음을 알 수 있다.
민족 반역자의 때가 묻음으로써 겪은 수박애사가 아닐 수 없으며, 한국인의 깐깐한 정신사를 이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고운석< 시인 >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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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