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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칼럼>대통령 ‘한중록’ 떠 올려야
2013년 11월 25일 00시 00분 입력
지금은 선거가 없지만, 사극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왕과 나’ ‘대조영’ ‘장록수’ ‘대왕세종’ ‘한명회’ 등 종영된 작품들을 여러 방송국이 2차 3차 방영들을 하기 때문이다. TV를 켜면 그야말로 일주일 내내 사극을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날씨가 쌀쌀해지면 가족이 TV앞에 모여 모두가 같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게 된다는 계절적 요인이나 세기말 풍조로 복고풍이 유행하는 것으로 설정될 수도 있다. 그것에 더해, 요즘에는 대선과 총선이 있으면 사극열풍이 부는데, 선거와 사극은 함수관계가 있어 이해되기도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선이나 총선이 열리는 해엔 유독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들은 바람직한 대통령상의 모델 역할을 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러한 사극 열풍 속에서도 유독 빠지지 않는 소재가 바로 ‘정조’를 다룬 사극이다. 정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조 제 22대 왕으로 전제 개혁·규장각 제도 시행 등 개혁군주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정치 이슈 중 ‘개혁’보다 구미를 당기는 아이템은 찾기 힘들며, 이러한 점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에 사극에서 자주 등장한다. 정조에 관한 드라마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책이 있다. 영조의 며느리요,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작성한 ‘한중록’이라는 책이다.
아들을 굶겨 죽인 아버지가 있다. 그것도 무참히 뒤주에 가두어, 아버지는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영조요, 아들은 장차 전 조선의 운명을 한 손에 쥐게 될 세자, 바로 사도세자였다. 성군이 어찌 이토록 귀중한 아들을 죽였던가. 도대체 사도세자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토록 모진 벌을 받아야 했나. 이 비극은 임오화변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세자는 끝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주에 들어갔고, 대왕이 직접 꽁꽁 봉한 작은 뒤주 속에서 어둠, 무더위, 기갈을 이기지 못하고 아흐레 만에 죽었다. 이 과정을 지척에서 겪고 보고 들은 이가 세자의 부인 혜경궁이다.
혜경궁은 이 참혹한 광경 앞에서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저 자신과 아들을 살려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했다. 혜경궁이라고 생각이 없고 할 말이 없겠냐마는 그것을 약간이라도 밖으로 꺼내려면, 시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간절히 여망한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정조는 아버지를 죽임으로 모는데 외가도 한몫 했다는 주위의 입방아를 무심히 넘기지 못하고 외종조부이자 어머니의 작은 아버지인 홍인한을 사사한다. 이는 두고두고 혜경궁에게 한으로 남는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외가의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는 정조가 돌연 급사하고, 이를 틈타 오랜 정적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으로 집권해 다시금 혜경궁의 친정에는 회오리가 몰아치는데, 이번에는 가장 사랑하는 동생 홍낙임이 유배지에서 죽게 된다. 혜경궁이 이러한 정치적 풍파를 겪고 쓴 기록이 ‘한중록’이다.
‘한중록’은 다섯차례에 걸친 혜경궁의 회고를 여러 방식으로 편집해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한중록‘의 가치는 혜경궁의 글 솜씨나 전대미문의 끔찍한 사건과 그 배경에 대한 사실적 설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아버지의 가해, 남편의 죽음, 아들의 공격, 친정의 파탄 등 이보다 복잡할 수도 없고 더 난처할 수도 없는 상황을 이겨낸 한 여인의 내면을 그녀의 진술을 따라 이해가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정치, 인간관계, 인간심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한중록‘이 가지는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인간의 삶,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한 많은 물음을 건질 수 있다는데 있지 않은가 싶다. 정치란 치이는 있을지언정 현대의 정치판도 별로 변한 게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록을 기억하며 한층 발전된 역사를 남겼으면 한다.
고운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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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