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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칼럼>댓글조작에 ‘#미투’ 꺼지는가
2018년 05월 18일 00시 00분 입력 민주당 댓글조작 사건의 주범 김 모(49·필명 ‘드루킹’)씨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의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문에 서지현과 안미현, 두 여검사 폭로의 성추행 사건으로 불붙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시들해진 것 같다. 목숨으로 용서를 구한 사람까지 있어 입에 올리는 것도 불편해진 부분이 있어 ‘미투’가 잠재워질까 걱정된다. ‘미투’의 본질,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성추행, 성희롱을 포함한 성폭력은 가장 치졸하고 악의적인 형태의 권력 남용이다. 힘의 불균형, 피해자를 인격체가 아닌 자기만족의 대상으로 삼은 가해자의 병리적 자기애와 반사회성이 빚어낸 범죄행위이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미투’는 여성들이 시작했지만 여성에게 국한된 이슈도 아니란다. 남성이 우위인 사회에서 약자인 여성이 남성에게 당한 경우가 빈번하지만 동성애자인 남성들 간에 벌어지는 성폭력이 더 심한 굴욕감과 박탈감을 낳을 수도 있다.
이렇듯 ‘미투’의 본질은 성이 아닌 권력구조와 맞닿아 있다. 짧은 치마를 입어, 술자리에 갔기 때문이 아니다. 즉, 피해자의 행동때문에 빚어진 결과가 아니니 성폭력 피해자는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죄의식과 수치심이다. 사회적 노출이 금기시되는 성행위를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성이 짓밟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유행의 폭력보다 더 처절하게 오랫동안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다.
영혼을 파먹고 삶의 지축을 흔드는 상처에 동행하는 복잡한 감정과 불안정한 심리는 시, 소설, 연극, 영화 등의 창작물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미투’의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영혼의 상처를 묘사하여 울림을 주는 창작작업을 하는 사람에 의해 자행되었기에, ‘인간의 본능적 실체에 솔직한 예술가라서, 풍부한 감정표현을 가르치려다 보니, 같은 마음이라 생각해서…’가 어찌 당위성을 갖는가! 본능에 충실하고, 체험한 현실만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이 무엇인가. 같은 아픔이라니, 상대를 고유한 인격체로 인정 안한거 맞다.
이들의 창작물에 울고 웃는 대중은 또 어떤가. 누군가는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대중”이라고 했다 한다.
우리가 공감한 치유받았던 감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가해자들이 만들어놓은 창작의 세계에 공감하고 공명을 느낀 우리는 모두 공범인가. 문화권력자들의 힘의 유희에 놀아났으니 ‘미투’ 방관자의 죄책감은 비단 가해자나 피해자 주변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작품에 공감한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이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방관한 일상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성폭력의 민낯을 보면 피해자들은 멈춰진 시간을 사는 듯하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제의 일이 아닌 오늘처럼 느낀다. 몸도 기억하기에 터치에 민감하다. 가벼운 성적 농담에 얼어붙고 따뜻한 포옹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성적쾌감을 느끼게 자신을 허락지 않아 사랑의 결실이 성적 친밀감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밝히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다. 고통의 시간 속에 묻어두는 비밀이 된다.
과거의 경험을 매일같이 재현하며 살고 있으니 빼앗긴 시간은 좀 억울할까. 시간을 돌려주려면 자초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성폭력은 사회적으로 가장 지탄을 받아 마땅한데도 성에 대한 금기시와 권력자의 위상때문에 빈번히 자행되고 쉽게 용서가 되기도 한다. 직장내 성추행은 대충 넘어가 주는 것이 덕목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미투’운동은 피해자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모두에게 불편감을 준다. 불편한 것은 피하고 싶고 빨리 잊고 싶다.
하지만 겨우 세상밖으로 나온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될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미투’가 잠재워지면 안되는 이유다.
‘미투’가 문화예술계에서 봇물처럼 터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영감을 주는 예술인들의 본모습에 권력에 대한 탐욕이 덧입혀져 피해자들은 더 아렸을테니. 그 더러운 옷을 벗기를 바란다. 대중은 순수한 예술혼에 공감하고 치유받고 싶다. 한데 드루킹게이트로 싸우는 정치때문에 멈춰버리면 안된다.
/고 운 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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