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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율성 논란, 냉전의 귀환
2023년 08월 28일 13시 51분 입력
‘정율성’을 둘러싼 갈등이 점입가경의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점에서 본령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바로 잡을 필요성이 있다.
우선, 정율성의 인생 스펙트럼은 대략 세 가지인 것 같다. 정율성은 ‘공산주의자’가 맞다. 또한 항일운동가이며, 천재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에 대한 진위를 따지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하필이면 왜 지금에 와서 정율성을 소환해서 뭇매를 놓는지, 정율성의 여러 면모 중 ‘공산주의자’라는 점만을 콕 찍어 이야기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한국과 중국이 문호를 개방해 한중수교를 체결한 것은 1992년 노태우 정부 때였다. 그 다음 해 1주년 기념식 때 정부 주도로 ‘정율성음악회’를 개최했다. 그때는 정율성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을까?
당시 노태우 정부가 본 것은 공산주의자인 정율성이 아니라 항일운동가 정율성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비슷하게 항일투쟁을 벌인 나라이고, 양국을 오가며 항일투쟁을 벌인 정율성의 행적을 통해 양국간 동질성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정율성이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던 천재적인 음악가였다는 사실도 중요한 이유이다. 정율성은 노태우 정부에 의해 한중 친선의 상징으로 채택됐다.
21세기인 지금은 탈냉전시대이다. 탈냉전시대의 가장 선명한 특징은 탈이념과 경제중심주의이다. 이념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수정부였던 노태우 정부가 1992년 8월에 ‘한중수교’를 맺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닌가. 공산주의는 이미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이젠 누구도 그 이념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시대를 거슬러 공산주의를 소환하고, 자유주의를 참칭하며 국민의 사상과 감정을 갈라치기 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태가 너무 가련하고 안타깝다.
노태우정부 때(1988-1993) 독일이 통일됐고(1993), 소련이 해체(1992), 중국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로 전환(1992)됐다. 서방세계 민주진영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을 어떻게든 자국의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됐었다. 냉전체제의 붕괴는 더 센 가속도를 얻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을 두고 공산주의자 운운하면서 사업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냉전시대의 늪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은 탈냉전 시대다. 우리가 치러야 할 치열한 전쟁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전선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그어져 있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주도권 전쟁이라든지, 이념의 벽을 넘어 시장 확대, 에너지, 자원 확보 전쟁 같은 것이 우리의 새로운 전장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이런 전장을 두고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광주가 정율성을 우상화 한다고? 천만에 광주만큼 정율성을 있는 그대로 보는 곳은 없다. 광주는 노태우 정부 이래로 이어져 온 한중간 친선과 문화교류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광주에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 철 지난 이데올로기 공세, 일방적 갈라치기에는 이골이 났다. 어쩌면 그것이 더 슬프다. 아픈데도 아픈 줄 모르는 것이니까.
여당의 모 의원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정율성에 대한 몰상식한 역사적 평가를 했고, (중략) 이번 정율성 논란은 민주당의 정치적 에코챔버가 곪다 곪아서 터져버린 것”이라고 했다. 제가 보기에 에코챔버는 정부여당에서 훨씬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얼마나 깊게 세뇌됐으면 남들은 다 잊어버린 말, 용도 폐기된 이념들을 들먹거리는 것일까? 여기 광주사람들은 ‘공산당’이니 ‘멸공’이니 하는 말들을 꺼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광주에서 이념논쟁을 벌였다가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가리지 않고 시대착오적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지금은 21세기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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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