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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선>상사화와 홍두(紅豆)
2010년 10월 13일 00시 00분 입력
가을이 되었어도 마음이 뜨겁지 못하거든 불갑사 초입의 상사화를 만나시죠. 홍 붉은 상사화가 그대의 시린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주리니….
상사화, 누가 그 이름을 붙였는지 참 가엾고 애절하군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 그래 잎은 꽃이라는 동생의 얼굴조차 모르고 꽃은 또 잎이라는 형님의 모습을 모르다니 그들의 동근생으로서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어찌 간절하지 않았겠는가?
옛날 중국의 한 변방에 젊은 부부가 다정하게 살고 있었단다. 어느 날 평화롭던 마을에 전쟁이 터져 그만 남편이 징병되어 갔다가 하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그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름 모를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단다.
그녀가 죽은 이듬 해 봄, 한 그루 나무에서 홍 붉은 꽃이 피어오르고 굵은 콩이 열리자 동네 사람들은 그 것이 남편을 그리다 죽은 부인의 넋이 환생한 것이라 생각하고 홍두라고 불렀답니다. 그런 홍두는 남국이 원산지인데 당나라 왕유의 시에도 홍두가 나오며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우리의 옛 시인들도 홍두시를 여럿 읊었다.
특히 대만 미모의 여가수 등려군은 <홍두>라는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 남녀 간의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도록 부추겼다. 상사화, 다른 말로 남초(南草)라고도 하는데 그 것은 아마도 남국이 그 원산지라서 부르는 말일 게다.
익는 것은 다 가을이라 부르자. 가을이면 그래서 그런지 하늘이 익어 창공이 되고, 별이 익어 수정이 된다. 남녀 간의 말이 익으면 우리를 그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친구간의 익은 정은 우정이라 하리라.
이제 아직 익지 못한 것들은 부지런히 열을 내야할 때이다. 남북 간에 신뢰를 익히고 가진 자와 지니지 못한 자 사이의 서먹한 소통을 익게 해야 하리다. 지방과 중앙의 소통은 두 말하지 말자. 얼마 안 있으면 차가움이 내려와 마음을 움츠리게 하고 등 시리고 허리 굽게 할 텐데…. 걱정이다.
아직 홍 붉지 못했거든 영광 불갑사 초입으로 가시지요. 마지막 열을 내며 대지를 붉게 달구고 있는 그 숭고한 상사화 속에 차가운 이성을 묻고 다수운 남도의 감성을 담으시죠. 가을이 되어 마음이 익으면 누군가 그리워질 것입니다.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해 보셨나요? 사무치게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그 것은 인생에 대한 기만입니다.
이 가을 우리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시지요. 그래서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지 못했다면 그래, 시집이라도 한 권 주워들고 음영해 보시지요. 하늘이 높고 구름이 맑으니 덩달아 시 맛이 참 깊을 것입니다.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속에 내가 있으니 서로 만나지 못하여 상사화만 흐드러지게 피우는 지금, 아 등려군의 노래가 가슴을 파고들어, 맬 없이 소줏잔만 기울입니다.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시인>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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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